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 평
<헤르메스의 기둥>은 1996년 12월에 나온 추리 소설이다. 출간되고 23년이 지난 후인 2019년 12월 내게 이 소설의 청탁 메일이 왔다. 메일에는 '1996년에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 상당한 화제를 뿌렸던 걸로 기억하는데(한국판 <장미의 이름>등등)' 라는 대목이 있었다.
23년은 많은 걸 사라지게 만든다. 나도 청탁 메일을 받고서야 이런 소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의뢰를 받았으니 책을 구해야 하는데 이미 다 절판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오래된 도서관에서 책을 찾았다. 책은 한때 인기가 있던 듯 표지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동시에 몇 년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듯 먼지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왠지 금서라도 읽는 느낌으로 빌려 돌아와 표지를 열었다. <미스테리아>를 비롯해 몇 개의 매체에 이런저런 서평을 보내 봤지만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지브롤터에 있는 성 헤르메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김승호 씨의 모험담이다. 김승호 씨가 연구하는 그림으로부터 모험이 시작된다. 그림 속에 놀라운 비밀이 있고, 승호 씨는 여자친구 유하영 씨와 함께 그 비밀을 찾아 나선다. 왠지 신나는 일이 일어날 듯한 줄거리다.
이 소설의 흥미롭고 재미나고 귀여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 잘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식당 문이 닫을 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한 정도다. 하지만 이날 의뢰 받은 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예술품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헤르메스의 기둥>에는 주인공보다 더 중요한 미술 작품이 있다. 작품 이름은 '긴 목의 성모'다. 이탈리아의 화가 파르미지아니노(1503-1540)의 대표작이다. 파르미지아니노도 '긴 목의 성모'도 내가 전혀 모르는 부분이라 조금 자료를 찾아보았다. 파르미지아니노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사이의 매너리즘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일부러 고전적인 비례나 원근법을 비틀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 속 성모의 목이 길어지고 성모 뒤편에 있는 기둥의 원근법이 애매해졌다. 송대방은 이 애매한 원근법이 낳은 틈새 안에 자신의 상상을 집어넣어 <헤르메스의 기둥>을 썼다.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려면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긴 목의 성모'는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 소장 작품이다. 피렌체는 동아시아를 강타한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온 두오모로도 유명하다.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의 본거지인 피렌체를 <헤르메스의 기둥>과 <냉정과 열정 사이>로 소개하려니 머쓱하지만 별 수 없다. 파르미지아니노의 다른 대표작들은 서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성 제롬과 성모자'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볼록 거울에 비친 자화상'은 빈 예술사 박물관에 있다.
<헤르메스의 기둥>이 좋은 소설이냐는 물음에는 잘 모르겠다고 답해야 솔직할 것 같다. 소설 구조나 출간 시점을 봤을 때 <헤르메스의 기둥>은 움베르토 에코의 역사 미스테리물을 보고 지적인 충격을 받은 한국 작가의 회답 같다. 그럴 수 있다. 문체든 작품 구조든 노래에서의 사운드 톤이든, 시대를 대변하는 뭔가가 나오면 그를 닮은 창작물이 여러 곳에서 메아리친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미술 음모론 미스터리물의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중심 작품과 관련해 주인공이 낌새를 채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알고 봤더니 그 뒤에는 거대한 음모론이 있다'는 줄거리 말이다. 이건 에코도 댄 브라운도 송대방도 쓰는 미스터리 구조의 기본 탬플릿이다. 1996년 한국에서 700 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라는 형태로 그 이야기를 만든 송대방의 에너지는 분명 대단하다.
2020년의 독자가 이 소설을 두고 재미 운운하는 건 세련되지 않은 일 같다. 내게 <헤르메스의 기둥>이 흥미로운 부분은 책에 보관된 1996년 한국의 한 단면이었다. 그 당시 남자들이 열광했을 법한 음모론과 연금술, 신화와 상징, 지금이라면 없었을 사소한 오류, 1996년 스팅 앨범 '머큐리 폴링'까지(놀랍게도 앨범 수록곡 가사까지 의미 있는 장치로 나온다).
나는 이 책이 가진 완성도의 한계가 아쉽다기보단 이 책에 박제된 1990년대 후반이 반가웠다. 이 시대를 기억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참 닫혀 있던 종이 책을 펴면 나는 냄새가 있다. 그 낡은 종이 냄새는 왠지 그때의 냄새인 듯한 착각이 든다. 내게 <헤르메스의 기둥>은 그런 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꼭 여행을 가야 한다면 가장 어울리는 목적지는 지브롤터도 피렌체도 아닌 90년대 한국 대학문화가 남아 있는 노포일 것 같다. 학림다방, 민들레영토 각 지점, 신촌의 칵테일바 거품 같은 곳들. 이런 곳에서 잭 다니엘스같은 걸 마시면서 스팅을 신청해서 듣는 게 <헤르메스의 기둥> 투어라고 주장하고 싶다. 2020년이 와도 스팅의 노래를 틀어 주겠지?
1. 미스테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28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에서 느껴질 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2. 송대방 작가님의 향후 행방이 책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송대방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입니다. 약력을 찾아보면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셨다고 되어 있을 뿐 그 다음의 자취는 적어도 인터넷엔 없습니다. “그곳에서도 외부 활동 없이 연구실에만 머무는 듯하다. ‘헤르메스의 기둥’ 개정판을 내려고 했을 때 연락이 잘 안돼 어머니를 통했는데, 우편이 오가는 데 몇 개월이 걸렸다. 학위에 전념하느라 시간이 없어서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으로 안다” 라는 코멘트만 11년 전 기사에 남아 있습니다. 신비롭죠.
3. 스팅은 <헤르메스의 기둥>이 나온 1996년 서울 공연을 했군요. 공연 클립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같은 날 틀어두기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