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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23. 2016

고급한 건축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 인터뷰


2015년 8월 서울 청담동에 크리스찬 디올의 단독 매장인 ‘하우스 오브 디올’이 문을 열었다. 이 건물의 건축가는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1944~)이다. [루엘]에서 일한 덕분에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의 경력에는 값비싼 건축도 있다. 뉴욕의 ‘원 57’과 ‘400 파크 애비뉴 사우스’는 아주 고급스러운 아파트다. ‘하우스 오브 디올’도 명품 브랜드의 단독 매장답게 굉장히 고급스럽다. 하지만 디올의 신전을 쌓아 올린 당사자는 고급이 먼저가 아니라고 말했다.


디올의 나라에서 온 당신의 머리 속에 있는 크리스찬 디올의 이미지는 어떤가?

크리스찬 디오르가 나타났을 때 나는 어린 아이였다. 그는 데뷔부터 엄청났다. 천재적인 예술가가 나타나서 여자 옷의 역사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것 같았다. 우리에게 디올은 신화적인 존재였다. 80년대에 프랑스의 회사들이 많이 도산할 때도 베르나르 아르노는 “디올(DIOR)이라는네 글자”만 보인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프랑스에서는 정말 중요한 입지를 가진 브랜드다.

그래서 내게 디올 하면 섬세하고 혁신적이고 예술적이라는 느낌이 떠오른다. ‘럭셔리’이기 전에 예술적인 문화를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은 거랄까. 서울에 하우스 오브 디올을 지을 때도 나의 머리 속에는 이미 디올의 이미지가 들어 있었다.


예술적이라는 이미지가?

그렇다. 내게 디올은 예술가의 왕국처럼 보인다. 하우스 창시자인 크리스찬 디올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가 사망하고 나서도 이브 생 로랑, 지안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등에 이어 오늘날의 라프 시몬스까지에 이르는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역사를 남겼다. 내가 본 디올의 옷에는 섬세한 천을 아주 미려하게 다뤄서 마치 조각하듯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디올 매장도 건축물이지만 옷을 만드는 느낌으로 만들어보려 했다. 앞으로 전시될 크로키나 뎃생을 보면 이런 생각으로 옷을 조각하는 것처럼 건축물에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술적인 이미지가 건물에 나타난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 건물은 매우 유연한 느낌이 든다. 동시에 매우 환하게 디자인해서 결과적으로는 만지고 싶은 느낌이 나도록 했다. 가벼움, 움직이는 듯한 느낌, 부드럽고 유연한 선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건물의표면 처리도 특별하게 했는데, 한국의 조선업에 종사하는 기술자의 자문을 구했다. 그쪽의 도움 덕분에 배를 건조하는 기술로 건물의 표면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우스 오브 디올을 만들기 전에 서울에 와본 적은 있었나?

20여 년 전에 처음으로 한국에 와 봤다. 그때는 국립중앙박물관 현상설계에 참가했다. 그때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이곳의 전통적인 건축과 박물관을 많이 보았다.


그때 받은 느낌이 어땠나? 그때의 느낌이 하우스 오브 디올을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나?

내가 본 한국 건축은 중국과 일본과는 정말 다른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건축뿐 아니라 회화를 비롯한 문화 전반을 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미묘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짓는 건축물은 그게 무엇이든 그 주변경관과 상당히 깊은 연관이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명품 거리이므로 건물 디자인에 좀 더 자유를 줄 수 있고, 행정적으로는 높이 제한이라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우스 오브 디올 역시 그러한 주변 경관과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최근 뉴욕의 초고급 아파트인 ‘원57’을 건축하기도 했다. 하우스 오브 디올도 그렇고, 요즘 당신의 작업 목록 중에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들이 있다.

원 57같은 경우는 뉴욕 센트럴 파크를 내려본다는 아파트의 입지부터 고급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아파트 아래에 호텔 파크 하얏트도 들어가니까 그곳에서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건축가가 고급스러움을 먼저 생각하고 건축을 하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


아주 고급스러운 건축을 만들었지만 고급스러움은 먼저 생각할 게 아니다?

시민이 원하는 삶이 녹아 있는 서비스를 먼저 생각하고 건축을 해야 한다. ‘고급스러움’ 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건축가라면 조경과 빛을, 접근성과 친밀성과 타인과의 만남을 결정 짓는 동선 같은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생각해서 삶에 가깝게 다가가는 좋은 건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잘 하고 나서 질 좋은 재료 등의 ‘퀄리티’가 더해질 때 고급스러움은 자연스럽게 입혀진다. 고급스러움을 먼저 생각하고 들어간다면 바보 같은 건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론 아닐까?

예를 들어 보자. 2003년에 원57과 비슷한 ‘400 파크 애비뉴 사우스’ 라는 아파트를 건축한 적이 있다. 뉴욕 파크 애비뉴 사우스 쪽에 있는 작은 아파트였다. 원 57에 비하면 아파트의 규모도 작았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센트럴파크가 다 보이는 원 57처럼 멋있지 않았다. 하지만 건축이 끝나고 판매가 시작되는 순간 50% 이상이 청약되며 순식간에 판매가 되었다. 이 건물은 입주자와 청약자, 부동산 사람들도 모두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때 방금 이야기한 교훈을 깨달았다. 결국 좋은 건축은 대중이 평가하는 게 아닐까.

400 파크 애비뉴가 있는 동네가 그렇게 멋진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건축적으로 훌륭하다면 사람들은 ‘이제(이 아파트 덕분에) 동네의 풍경이 멋있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고급스러움 아닐까. 그리고 내가 말하는 고급스러움 안에는 간결함이 담겨 있다. 화려한 게 아니라 삶과 연결된 간결한 것, 이것이 고급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했던 스스로의 일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나?

현대 사회의 도시는 굉장히 복잡하고 살기 어렵고 힘든 곳이다. 이공간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 도시설계의 어려운 숙제다. 나는 건축가인 동시에 도시설계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시를 살렸다는 것, 조금 더 살기 좋은 환경의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축가들이 내가 만들어온 길을 함께 가고 있는 걸 확인했을 때 가장 기쁘다.


당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났다. 1962년부터 프랑스의 엘리트 건축 학교인 에콜 드 보자르에서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69년 졸업했으니 방황이 길었던 셈이다. 그는 뉴욕에서 9개월간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건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건축은 너무 관료적이고 예술에 비하면 자유롭지도 않은 데다 실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지도 못한다”는 이유였다. 젊음이란.


마음을 잘 잡은 모양인지 지금 그의 커리어는 굉장히 풍성하다. 1971년부터 지금까지 경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건축물 장르도 무척 다양하며 건축 장소도 전지구적이다. 후쿠오카의 공동주택, 베를린의 파리 대사관, 뉴욕의 초고급 아파트와 파리의 도시 재정비 등 그는 다양한 건물과 거리의 모습을 빚었다. 그는 1994년 프랑스인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직접 만나본 포잠박은 참새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는 다정한 노신사였다.


월간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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