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발 스타일 아이콘과 베네수엘라의 마에스트로
냉전의 유산 중 하나인 인터넷이 전 세계에 퍼지며 21세기가 시작됐습니다. 보수는 포용했고 진보는 용서했습니다. 지난 세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록스타 같은 흑인과 베네주엘라에서 온 마에스트로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낙관하기는 이릅니다. 아직 고전적인 독재자와 새로운 방식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가 세계의 어딘가에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이들은 어떻게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작년에 발행된 <루엘> 100호를 맞아 시대의 발자국 같은 100명을 소개하는 기획을 맞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저는 100명의 반인 50명을 담당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을 뽑고 토론하고 선정해서 자료를 찾아 원고를 적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오늘부터 10명씩, 금요일까지 50명을 소개하려 합니다.
원고는 2015년 6월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조제 모리뉴나 위르겐 클롭처럼 2016년과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게재 당시의 느낌을 위해 그대로 두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소개하다 보니 분명히 제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탄 없는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구스타보 두다멜 Gustavo Dudamel, 1981~
LA 필하모닉 음악 감독
클래식 음악 변방인 베네수엘라의 한 소년이 빈곤층 교화를 위해 만들어진 국립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에 들어간다. 재능이 만개해 베네수엘라와 불편한 관계인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임명된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LA 필하모닉 지휘자라는 사실은 세계가 조금씩은 전진하고 있다는 증거 같다. 오케스트라를 쥐어짜지 않고도 손쉽게 절정에 이르는 그의 지휘와 음악도.
스콧 슈먼 Scott Schuman, 1968~
사진가
스콧 슈먼은 뉴욕 거리의 멋쟁이들을 찍어 여기까지 왔다. 그는 블로그와 DSLR로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장르를 전 세계에 공급했고, 21세기 문화는 아래에서 위로도 올라갈 수 있다는 정보화시대의 이상론을 증명했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에게 사토리얼리스트는 30페이지쯤 뒤로 지난 경향이겠지만 그가 시대의 상징물이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트래비스 칼라닉 Travis Kalanick, 1976~
우버 CEO
우버는 스마트폰이 바꾼 21세기의 일상을 상징한다. 우버는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스마트폰이 없이는 성립할 수도 없는 서비스다. 동시에 우버는 지금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확장하는 회사다. 노화한 기존의 산업에 사용자 편의라는 사탕을 들고 들어와서 기존 질서가 박살나든 말든 뿌리를 내린다. 트래비스 칼라닉은 이 문제적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다.
타일러 브륄레 Tyler Brule, 1968~
<모노클>편집장
종이 매체가 갖고 있던 기능적 장점이 인터넷 때문에 다 잘려나간 지금, 종이매체는 무엇을 만들어 팔아야 할까? 타일러 브륄레는 <모노클>이라는 답을 냈다. 그 답의 이름은 매력이다. <모노클>은 영국적 시각으로 바라본 전지구적 단위 정보를 깔끔한 영국풍 분위기로 다듬어 팔고, 독자들은 ‘나는 세련된 잡지를 보는 사람’이라는 기분을 산다. 역시 장사는 영국인처럼 해야 한다.
키노시타 타카히로 木下孝浩 Kinoshita Takahiro, 생년 비공개
<뽀빠이> 편집장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패션 잡지 중 하나인 <뽀빠이>는 근 2~3년간 전 세계의 소년과 소년이 고 싶은 어른들이 주목하는 패션잡지가 되었다. 그 잡지의 우두머리는 <브루투스>에서 넘어온 타카히로 키노시타다. 그는 20세기 서양의 별별 이미지를 다 가져와서 도쿄에서 귀엽게 다시 조합하고 ‘시티보이’라는 라벨을 붙였다. 21세기를 맞이하는 더없이 일본적인 자세라고 봐도 되겠다.
프란치스코 교황 Papa Francesco, 1936~
교황
2014년 <타임>은 교황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한 후 버락 오바마에게 인물평을 맡겼다. 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리더는 드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리더다.’
블라디미르 푸틴 Vladimir Putin, 1952~
러시아 4대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처럼 고전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운용할 수도 있다. 법을 이용하고 필요한 방식으로 바꾸면서 결론적으로는 적법한 방식으로 대통령에 선출될 수도, 종종 부정선거가 발견될 수도, 정적이 의문의 암살을 당할 수도 있다. 시대를 이끄는 다양한 방법이 모두 선진적이지는 않을 테니 지금이 21세기든 뭐든 푸틴이 세계의 운명을 일부 쥐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노박 조코비치 Novac Djocovic, 1987~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는 2015년 현재ATP 싱글 부문 세계 랭킹 1위다. 최연소의 나이로 메이저 4개 대회의 4강까지 올라갔고 그 중 롤랑가로스를 제외한 3개에서 우승했다. 9개의 마스터즈 대회도 신시내티를 제외하면 모두 우승했다. 21세기를 이끄는 테니스 선수를 넣어야 한다면 조코비치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는 스코어다. 유니폼 스폰서가 유니클로라는 사실도 21세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1969~
영화감독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낸 몇 안 되는 21세기 영화감독이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성장하는 서사 구조나 그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레트로 팬시’ 같은 건 전 세계에서 웨스 앤더슨만 만들 수 있다. 팔리는 물건은 많아도 자기 색이 있는 물건은 별로 없다. 호불호를 떠나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가치 있는 이유다.
지-드래곤 G-Dragon,1988~
가수, 패셔니스타
그는 하나도 한국 시장을 신경 쓰지 않은 옷차림으로 한국 시장과는 전혀 다른 주류 팝 시장의 톤을 가진 음악을 만든다. 그랬는데도 ‘노래로 건물을 올리’고 ‘시계 자랑이 우습’다는 가사를 썼는데 그건 과장이 아니다. 이번에도 빅뱅의 신곡은 나오자마자 아시아 7개국에서 아이튠즈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지-드래곤은 한국의 누구도 가보지 못한 영광의 길에 홀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