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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02. 2016

21세기의 사람들-04

증오를 극복하거나 증오를 증폭시키거나

냉전의 유산 중 하나인 인터넷이 전 세계에 퍼지며 21세기가 시작됐습니다. 보수는 포용했고 진보는 용서했습니다. 지난 세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록스타 같은 흑인과 베네주엘라에서 온 마에스트로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낙관하기는 이릅니다. 아직 고전적인 독재자와 새로운 방식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가 세계의 어딘가에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이들은 어떻게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작년에 발행된 <루엘> 100호를 맞아 시대의 발자국 같은 100명을 소개하는 기획을 맞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저는 100명의 반인 50명을 담당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을 뽑고 토론하고 선정해서 자료를 찾아 원고를 적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오늘부터 10명씩, 금요일까지 50명을 소개하려 합니다. 


원고는 2015년 6월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조제 모리뉴나 위르겐 클롭처럼 2016년과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게재 당시의 느낌을 위해 그대로 두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소개하다 보니 분명히 제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탄 없는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European People's Party/commons.wikimedia.org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1954~

독일 8대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동독 출신 여성에 자연과학자 출신에 정치적 배경이 없었으면서도 실용적인 정책과 검소한 면모로 10년간 총리를 하고 있다. 우리가 어릴 때 듣던 ‘담배를 피우려 네 사람이 모여 성냥 하나를 긋는다’는 독일인의 스테레오타입을 보는 것 같다. 조용한데 강하다는 사실도 똑같다. 그녀는 소박하게 3선에 성공했고 <워싱턴포스트>의 평처럼 “아무도 못 느끼게 독일이 유럽에서 지배적인 강국이 되도록 했다”. 메르켈은 실로 탁월하게 21세기 독일을 이끌고 있다. 할 일과 할 말만 하는 독일적인 방식으로. 


나영석, 1976~

예능 PD

나영석은 <1박2일>과 <꽃보다 할배>와 <삼시세끼>를 통해 확실한 자신의 문법을 만들었다. 한가한 스토리라인, 여행의 풍경, 세밀한 캐릭터는 나영석 세계의 성부 성자 성령 같은 필수 3요소다. 캐릭터가 중요한 건 21세기 문화상품의 풍조인데, 경쟁자들이 날것의 캐릭터를 찾아 다닐 때 나영석은 누가 들어가도 캐릭터가 되어서 나오는 구조를 짰다. 대단한 일이다.


아론 소킨 Aaron Sorkin, 1961~

극작가

유능하고 이상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있을 것 같은) 직장에 모인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을 것 같은 각 등장인물은 현실에서 고생하면서도 이상을 잃지 않는데 그 모든 과정이 엄청나게 많은 대사로 표현된다. 21세기형 엘리트 캐릭터 드라마, 극작가 아론 소킨이 <웨스트윙>과 <뉴스룸>으로 구현한 세계다. 아론 소킨 덕에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시간을 버리는 거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루이스 해밀턴 Lewis Hamilton, 1985~

F1 드라이버

F1드라이버는 시속 300km를 오가는 속도와 뇌를 두드려 패는 중력을 견디면서 mm단위의 미세한 조종술을 선보여야 한다. 루이스 해밀턴은 그 중에서도 최초의 흑인이고 비디오 게임부터 하면서 육성된 엘리트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변화한 시대를 상징하는 면이 있다. 2014년에는 2008년 이후 6년 만에 2014년F1 월드 챔피언까지 획득했다. 2015년에도 엄청나게 빠르다.


재니 민톤 베도스 Zanny Minton-Beddoes, 1960년대~

<이코노미스트>편집장

<이코노미스트>의 171년 역사를 통틀어 첫 여성 편집장이다. 이 잡지는 모든 기사가 편집부 전체의 의견이라고 간주되어 기사에 기자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편집장이 굉장히 중요하다. 언론산업의 대변혁기에 가장 전통적인 권위를 가진 매체가 여성 편집장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 사실 때문에라도 그녀는 시대적 상징의 자리에 오를 수밖에 없다.


신동엽, 1971~

방송인

한국 방송인 항목에서 다른 사람 말고 신동엽을 지목한 건 그가 일관적으로 세련되고 선진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웃겼기 때문이다. 그는 <헤이 헤이 헤이>때부터 불쾌할 정도까지 가지 않는 야한 농담의 명인이었고 <안녕하세요> 훨씬 전부터 각종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했다. 신동엽은 애초부터 미래에 가 있었던 건지도, 시대가 이제서야 그의 농담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민현준, 1968~

건축가

민현준은 경복궁 옆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건축가다. 그는 이용자의 동선을 통제하거나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걸 목표로 하는 최근의 건축 흐름과는 좀 다른 미술관을 만들었다.마당 개념을 도입해 동선을 활짝 열었다. 수수한 디자인으로 고궁 옆이라는 부지의 역사성과 31차례의 건축 심의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한국도 힘을 빼야 멋있다는 걸 아는 단계로 들어섰다.


데이비드 캐머런 David Cameron, 1966~

영국 총리

21세기는 지난 세기의 좌우나 계급 같은 개념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인이다. 명문가 출신의 보수당 대표임에도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여성과 소수민족의 의견에 관심을 기울인다. 영국도 스스로를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라 칭하는 유연하고 귀족적인 총리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는 역대보수당 지도자 중 가장 임기가 긴 축에 속하며, 최근의 총선에서도 보수당이 또 한번 승리하며 캐머런의 노선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한때의 해양제국 영국의 운명은 21세기에도 출렁거린다. 스코틀랜드 독립은 막았지만 EU가입여부 국민투표라는 난제가 또 남아 있다. 여기서 데이비드 캐머런의 역할과 선택을 지켜보는 것도 21세기라는 체스 게임의 관전 포인트다.


미첼 바첼레트 Verónica Michelle Bachelet Jeria,1951~

칠레 37대 대통령

남미의 ABC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는 모두 중도 좌파 성향의 여성이 대통령이다. 특히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의 삶은 21세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부의 폭력에 아버지를 잃고 반정부 활동을 하다 망명을 떠났는데도 칠레로 돌아와 ‘평화를 유지하고 전쟁을 피하는’ 국방을 공부해 국방장관 자리를 거쳐 대통령에 올라 재선에까지 성공했다. 카톨릭 국가인 칠레에서 두 번 이혼한 불가지론자 싱글맘이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서도. 그녀의 말처럼 “증오를 거꾸로 돌리는데 내 삶을 바쳐온” 결과다.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 أبو بكر البغدادي, Abu Bakr al-Baghdadi, 1971~

ISIS 칼리프

21세기의 악역을 맡고 있는ISIS의 리더다. 이들은 SNS를 이용해 국제적으로 조직원을 채용하고 점령지역의 치안을 보장해 민심을 얻는 등의 남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는 스스로를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인 ‘칼리프’라 칭하며 원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반면 미국이 그에게 1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건 건 물론 알 카에다까지 2천5백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평가가 이렇게 갈리는 걸 보면 누군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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