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초등교사의 결심.
나의 첫 번째 학급엔 특수학급 아동이 있었다. 몸무게가 세 자릿수인. 인지발달 장애로 학습 능력이 부족할 뿐 생활규범이나 사회관계 형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플라잉 디스크를 잘했고 성격이 서글서글하여 항상 웃으며 친구들과의 갈등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민원은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아홉 시가 넘어 1교시 수업 중에 문자 혹은 전화 통화가 온다.
"우리 00이 학교 갔나요?"
전화를 받으면 항.상. 술에 취해있다. 통화 내용의 요는 이렇다.
- 작년 선생님은 아침마다 00이를 데리러 왔는데 올해는 왜 안 오냐
> 작년 특수학급 기간제 특수교사가 아침마다 00이를 차에 태워 등교시켰다고 한다. 정시에 출근을 마친 교사가 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학교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개인 차량에 태우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더구나 학급 담임으로서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 왜 00이가 학교를 왔는지 안 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냐
> 학교를 왔으니까. 00이가 학교를 왔는지 궁금한 사람은 당신뿐이다. 담임인 나로서는 왜 학부모이자 보호자인 당신이 역으로 나에게 자신의 아들이 학교를 왔는지 물어보는 것이며, 담임이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한탄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아이는 1~2주에 한두 번씩 무단으로 학교에 오지 않는데, 이때 연락을 해도 학부모는 받지를 않으며 이렇게 되면 이 아이와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다.
-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
> 처음에야 담임 연락은 오후나 되어야 겨우 문자 답장 정도 수준이니, 가끔 전화가 걸려오면 큰일이 난 줄 알고 받았지. 매번 반복되니, 내 입장에서는 이 전화받자고 수업을 파행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는가. 전화 알람이 끊어지길 기다렸다가 수업 중이라는 문자를 넣는데, 이렇게 되면 이 학부모는 폭음을 시작하고 심한 날은 학교에 찾아온다.
이혼, 알코올 중독, 기초생활 수급, 아동 방치, 행정복지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는 인원. 뭐가 문제인지 느낌이 오지 않는가?
매번 술에 취해 학교를 찾아오는 날에는 교감 앞에 앉아서 '왕년에 내가 어쨌다는 둥' 식의 한탄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늘어놓는다. 꼬부랑 혀소리로.
같은 해 같은 학교로 함께 발령을 받은 동기가 한 명 있었다. 1년 뒤 사직을 하였다. 행정 내신으로 옮겨간 학교에서 무단결근 후 경기도교육청 감사과에 내가 있던 학교 교사 전부를 신고한 뒤에.
당시 20대 남자였던 나에게는 정보부장과 시설 기자재 담당 업무가 주어졌다. 모두가 떠나가는 학교였던 탓에 업무 시스템은 엉망이었고 제대로 된 서류가 남아 있지를 않았다. 시설 기자재 관리는 행정실에서 해야 하는 걸 도대체 왜 교사가 하고 있는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수업하다가도 티브이 소리가 안 나온다고 하면 고치러 가야 한다. 출근해서 학교 인터넷이 끊어져 있으면 서버실에 들어가서 교육청과 통화를 해야 한다. 갑자기 찾아온 무선 와이파이 설치 기사가 교실 문을 두드린다. 학교 정보기기 전담 용역 업체는 수시로 문자와 통화를 보내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니까 준 것.
발령 동기는 외국어 교육 업무와 원어민 관리, NEIS 담당 업무를 맡았다. NEIS 업무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주게 되었다고 들었다. 신규에게 NEIS를 맡기는 정신 나간 학교가 여기 또 있던 것. 전임자가 얘를 옆에 앉혀놓고 매뉴얼을 펼쳐보며 시스템에 대한 개괄적인 교육을 하는 데 나 같아도 면직 마려울 것 같았다.
결국 이 발령 동기는 교감에게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눈이 아파 컴퓨터를 오래 못 본다"라고 호소를 하였고 그 업무는 나에게 이관되었다.
왜?
한 번 들어온 업무는 군대를 전역하고서도 나를 떠날 줄을 몰랐다. 그 사이에 업무는 더 늘어 2021년 나의 업무는 정보부장, 시설 기자재, NEIS, 자치회 이렇게 네 가지가 되었다.
사건은 내가 병장 2호봉, 그러니까 사회를 거의 잊고 다시 사회로 나갈 생각에 여러모로 심란하던 때에 일어났다.
첫 해 근무를 마치고 2월 중순 입대한 나는 군 복무 중 불면증과 우울 장애 치료를 받고 다시 회복하여 전역을 기다리며 2021년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과를 마치고 야외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걸려온 교감 선생님의 전화.
"선생님, 군 생활 잘하고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000 선생님 관련해서 진술서를 좀 써줘야 해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했다.
경기도교육청 감사과에 제출할 건이라며 함께 근무할 당시 일을 가능한 상세하게 기록해 달라고 했다. 이 인간이 당시에 근무하던 교사 전원을 감사과에 신고하였다고 감사과에서 진술서를 전부 받아 기록의 일관성을 비교한다고 했다. 잊고 있었다. 당시 나를 너무나 화가 나게 했던 존재.
군대에서는 병사가 외부로 전자파일을 전송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기한 내에 진술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금요일이었던 당시를 기준으로 주말에 작업하여 월요일 아침 즉시 본청에서 우편 발송을 해야 했다. 군대에서조차 그 인간을 다시 떠올리며 주말 내내 진술서를 쓰고 있던 나는 분노에 휩싸여서 일곱 장이 넘는 글을 써 내려갔다.
눈이 아프다고 한 학기 내내 본인 업무를 파행한 일. 교실 문을 꽁꽁 닫고 모니터만 뚫어져다 쳐다보던 모습. 매일 같이 공동 사택 입구에 쌓여있던 택배. 정보, 기자재 업무에 6학년 특수통합학급을 맡으며 영재학급 강사까지 지정되었던 나에게 해당 교사의 업무가 이관된 사실. 업무 이관 후에도 NEIS 업무와 관련하여 자기 학급의 출결, 생기부 누가기록, 생기부 마감 등 기한 내에 제대로 처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사실.
하나 남은 외국어 교육 업무 역시 제대로 될 일이 없었고, 담당 교사와 전혀 소통이 되지 않던 원어민은 그 답답함을 급기야 컴퓨터를 고치러 온 나에게 털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2학기 중반 업무 재조정과 관련한 교감 주도의 회의에서 이에 관하여 몇 가지 건의한 일이 있었는 데, 되려 나에게 화를 내며 회의가 끝나자마자 복도로 뛰쳐나와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미친년.
이 외에도 당시 3학년 아이들을 지도한다며 교실에 3시간가량 가둬놓은 일, 주말마다 원어민에게 불필요한 연락을 한다는 소식, 과학의 날 행사 물품을 대신 집행한 교무부장님의 품의문서를 보곤 일요일 저녁에 교무부장님께 보낸 "품의하셨네요?" 문자.
일일어 적어내기엔 새로운 문서를 생성하는 게 나을 지경이다. 벌써 이 글에 적은 내용만 해도 이렇게 길어졌으니. 전역하고서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해당 교사가 나를 법원에 고소고발하겠다고 난리를 피웠고 결국 멀리 떨어진 학교로 행정내신을 보냈으나 지속적으로 연락 두절 상태롤 유지하다가 감사과에 신고를 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교사는 사직한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