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cyun Sep 21. 2023

이직을 생각하다.<3>

6년차 초등교사의 결심.




중증도 우울 에피소드 F32.


그래도 첫 학교에서는 이곳을 떠나면 다를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단지 시골이라서, 그리고 거주인구 구성이 독특한 지역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그렇고, 학부모도 그렇고 그렇다 보니 교직 문화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매일 100km씩 산을 넘어 출퇴근을 하면서 힘든 하루를 보내면서도 희망을 가지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퇴근을 하고 나면 운동도 열심히 했고 매일매일 식단 관리도 했다.


그렇게 옮긴 새 학교에서 나는 '중증도 우울 에피소드 F32'를 얻었다.


지역마다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학교가 있다. 타 시도의 학교로 근무지를 전보하기 위해서는 이동 점수가 필요한데, 보통 시내에 위치한 큰 학교나 신도시의 학교들은 관내에서도 선호도가 높아 관외 전보자들은 외곽에 있는 차순위 학교들을 고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인기가 아주 많은 대도시의 갑만기나 특만기(일종의 지속 근무 년수 제한 제도, 제한 근무 년수 안에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으면 무작위 타 시도로 강제 전보가 난다)를 피하기 위하여 주로 선택되는 인접도시의 학교들이 있는데 이 학교들이 이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한다. 타 시도에서 전보를 하게 되면 많은 경우 이 학교를 거쳐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옮긴 학교는 주로 수원과 성남에서 만기를 피해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학교였다. 주변 지역의 소득이 낮고, 시내에서 먼 곳에 위치하며, 지역 아동 보호 센터 (보통 가정 폭력이나 학대로부터 긴급 분리된 아이들이 학적지와 먼 곳의 보호 센터로 보내지는 데, 이 아이들은 본적교에 학적을 유지한 상태로 센터 기준 가장 가까운 학교로 임시전학처리된다.)가 근처에 있으며, 특수 아동의 비율이 매우 높은 학교.


한마디로 인기가 없는 학교였다.


교직 문화 역시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강한 무기력감을 느꼈고, 자아 효능감이 상실되었다. 반 배치조차 잘 못 되었는지, 우리 반의 기초학력, 기본학습 미달자는 13명이나 되었다. 학년에서 가장 힘들다는 학생까지 내 반이 되었다. 선택적 함묵증도 여럿. 친구들과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의 필통이 사라지는 사건으로 인해 학부모의 민원이 시작되었다.


- 좋은 학교 많은데, 나는 왜 이런 곳에만 오는 걸까?


-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바깥에서는 관심조차 주지 않을 텐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말도 안 통하는 존재들과 교실에 갇혀서 반나절 내 그들의 갖은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고 나면, 공허한 교실에 홀로 남아 그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창문 밖으로 어딘가를 바삐 이동하는 차들을 바라보고 서있던 적도 종종 있었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퇴근 이후에는 5평 남짓한 방 안에서 1m도 되지 않는 거리의 흰 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 이렇게 1년을 보내봤자 내년이 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하는데. 해마다 그랬듯.


죽고 싶었다. 어떤 날은 퇴근길에 화물차에 치어버리고 싶었다. 어떤 날은 아주 고속으로 달리다가 벽에 부딪혀버리고 싶었다.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었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두 번째 우울증은 그렇게 나를 괴롭혔고 이번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입원을 권고할 상태라며 당장 일을 쉬라고 하였고, 학년부장님과 교감선생님이 즉시 병가에 들어갈 것을 지시하였다. 당시 나는 스스로 끊임없이 이성적인 판단에 오류를 일으키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황급히 나를 학교에서 떼어낸 것이었다.


치료는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작가의 이전글 이직을 생각하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