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16번 카드. 탑
하루쯤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비틀거려도 계속 걸으라고 아이유는 노래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네 세상의 중심은 너라고 메리 올리버가 말했다. 위로의 언어를 죄다 믿고 싶은 밤이 있었다. 피가 멈추지 않던 여름이었다.
메이저 아르카나 16번. 탑이 벼락을 맞는 장면을 그린 카드가 있다. 콰콰쾅. 탑 위의 왕관은 날아가고 사람들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바벨탑이 붕괴되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 한다. 자신만만하게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그 여름의 내가 그랬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꼬박 누워 보냈다.
매일 못 견디게 피곤했다. 너무 피곤해서 하루에 15분 걷기도 힘들었다. 내가 내 몸을 건사하지 못해 엄마에게로 갔다. 아침을 먹고 나서 잠들고, 다시 눈 뜨면 점심을 먹고 또 잠들고, 낮잠에서 깨면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잠깐 정신이 났었는데, 잠시 오디오북을 듣다가 또 잠이 들었다. 새끼고양이처럼 종일 잤다. 한 계절 내내 내 옆에서 같이 자던 강아지는 키가 쑥 컸다.
지겨웠다. 끝없이 희망을 품어야 하는 것. 힘을 내야 하는 것. 생을 믿는 것. 얼마 깨어있지도 못하면서 매일 좋은 기분으로 지내보겠다 혼자 결심하는 일이 지긋지긋했다. 더 이상 뭘 매일 결심하고 마음먹어야 하나. 앙상해진 마음 같은 건 먹으려야 먹을 것도 없었다. 희망차기 싫었다. 그냥 절망하고 원망하고 우울하고 싶었다. 그래도 또 결국에는 힘내자고 자신을 설득하겠지. 모범적인 내가 지겨웠다. 흰 천에 떨어진 커다란 얼룩이 된 것 같았다. 이상의 《날개》 속 쓰임 없는 주인공의 하루를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분한 마음을 품고 ‘내 몸뚱이의 일부분’ 같은 얇은 이불속에서 또 잠에 빠졌다.
처음 이 카드를 배우던 때가 떠오른다. 절벽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마스터가 물으셨다. “밑에 바다가 있을 것 같은데요. 죽진 않을 것 같아요.”라고 나는 대답했다.
“특이하네. 대부분 바닥에 떨어져 죽을 것 같다고 대답해요.”
그때의 무엇이 내게 카드에 그려져 있지 않은 바다를 보게 했을까. 그 여름이라면 나의 바다는 엄마 밥이었고, 발밑에서 잠드는 강아지였고,
일기였다. 그즈음의 일기장에 짧게 남긴 문장들은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한 눈물겨운 구애들로 가득하다.
- 괜찮다.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 아직 망하지 않았다.
- 여기에 내가 존재해도 될 것 같다.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지 않아도, 다만 여기 잠시 고여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다.
- 내내 스스로 자랑스럽다. 살아있어서, 살아있어서, 살아있어서.
서글픈 나와 달래 보려 하는 내가 매일 토론을 반복하다 어느 날은 이렇게도 썼다. ‘유진아, 그냥 좀 순하게 속아. 아직은 내가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순하게 믿자. 제발.’.
생각할수록 사는 건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고 서럽고 쓸쓸한 일이니 삶 같은 건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무슨 대단한 일 같은 건 하지 말고, 그냥 꼬박꼬박 양치질 잘하는 어른 정도가 되어야겠다고, 하루에 꼭 하루치씩만 힘내어 살아야겠다고, 하루보다 더 큰 시간은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 삐딱한 채로, 어쨌거나 속기로 했다. 살아야겠다, 로 끝나는 일기를 썼다.
입을 힘주어 다물고, 눈에도 힘을 줘보고, 자꾸 굽어지는 어깨를 펴보았다. 스스로가 싫었던 날들조차 엄마 밥은 서럽게 맛있었으므로 세끼를 열심히 먹었다. 깨어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조금씩 더 오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강아지의 체온은 언제나 따뜻했다.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루들에 이름을 붙였다. 그날 만난 기쁨들의 이름이었다. 오늘은 A에 갔어. 오늘은 B를 읽었어. 오늘은 C를 봤어. 살아있으면 간혹 만날 수 있는 참 좋은 순간이 나의 하루들에도 있었다고, 그러니 순하게 속자, 유진아. 매일 나를 꼬드겼다. 행복한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깨어있는 시간을 쪼개어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네게도 이런 순간들이 있었어. 그 시간들, 그 사람들 속에 네가 있었어. 너였어, 유진아. 좋은 삶이야, 그렇지?
거듭 보고 듣다 보니 이제 그런 것도 같다. 정말로, 제법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특별나거나 대단한 면도 없고, 생을 바쳐 이뤄야 할 사명도 모르겠고, 그저 작은 재미에 히히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딜 봐서 좋은 삶이냐 물으신다면,
애니메이션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을 권해 드리지요. 특히 동생 이안이 마법으로 투명한 다리를 만들어 절벽을 건너는 장면을. 보이지 않아도 다리가 거기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 지금이 좋은 순간이라는 믿음, 명랑하게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의미 있다는 믿음이 나의 투명다리다. 거기 있다고 믿어야 비로소 거기 있는 것에 의지해 나의 하루들을, 짧지 않은 삶을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