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영 Jun 15. 2023

학부모회도 법이 필요한 이유

학부모회의 역사와 조례의 한계, 그리고 법률 제정의 필요성

제도화 이전 학부모회 운영의 역사


학부모가 학교교육의 주체로 제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라 할 것입니다. 5.31 교육개혁을 통해 공급자 위주 교육에서 학생, 학부모 등 수요자 위주로 교육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면서 학교운영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학교 교육은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학교 구성원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학교운영위원회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학교의 자율성이나 학교 자치가 활성화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학교 구성원인 학생, 학부모, 교사도 학교운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협의할 수 있도록 조직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또한 구성원들에게 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안내되지도 못했고, 학교장과의 친분에 따라 학교운영위원이 선출되고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한편 학교운영위원회 제도 도입과 함께 정부는 육성회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학부모회를 도입했습니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한 학부모회 규약 예시에 따르면 학부모회는 "학교교육 발전을 위한 지원활동과 회원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학부모가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주체들이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제도화하였지만 현실적으로는 학부모를 교육 지원자로 간주했습니다.


학부모회가 도입되고 15년이 지난 2012년에서야 교육부는 학부모회 규약 예시를 바꾸었습니다. 규약에 "학부모들이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 학교에 참여하여 학교교육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학부모회의 사업에 학교교육 모니터링 등 학교운영 참여를 포함하여 교육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때의 규약 예시 안은 이후 학부모회 조례 주요 조항들에 반영되었습니다. 현재 학부모회 구성과 운영의 기본 틀이 이때 제시된 것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부모의 참여가 저조하였고 학교 내에서는 학부모를 교육지원자로 인식하는 한계로 인해 학부모는 여전히 수동적인 교육보조자로 남아있었습니다.



10년에 걸친 학부모회 조례 제정


학부모회는 상당기간 단위학교별로 임의기구 형태로 운영되게 됩니다. 그러던 중 2009년부터 적극적으로 학부모 학교참여를 활성화한다는 목적으로 교육부에서 학부모지원사업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부모회조례가 제정됩니다. 지금은 대구를 제외한 모든 시도에 학부모회 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전국에 학부모회 조례가 제정되는데 무려 10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이죠. 모든 시도에 조례가 제정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학교는 물론이고 여전히 많은 학부모들은 학부모회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 문화를 바꾸고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학부모회의 필요를 인식하고 실천하려는 학부모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의 조례라도 제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부분의 시도에서 학부모회 조례가 제정되었으니 학부모들이 어디로 이사를 가더라도 학교 교육에 제도적으로 참여할 길은 열린 셈입니다.



시도별 학부모회 임원 선출시기와 임기


학부모회가 조례로 제정되었다고 해도 모든 시도의 조례가 같은 내용인 것은 아닙니다. 전체적인 구조와 틀은 비슷합니다만 세부적인 조례 내용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학부모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학부모들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속한 교육청의 조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 예로 학부모회장의 임기를 살펴보면 모든 시도의 학부모회 조례에 1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임원 선출시기와 연임여부는 시도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매년 3월에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임원을 선출하는 곳도 있고 정기총회 일정은 학부모회 규정으로 정하고 그에 맞춰 임원을 선출하도록 한 곳도 있습니다.



학부모회 조례의 한계와 대안


현재 학부모회 설치와 운영과 관련해서 상위법령 없이 조례만 있습니다. 그래서 벌칙규정도 없습니다. 학교에서 조례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행정 지도 이상의 조치를 취하기 어렵습니다. 상위법이 없는 조례가 갖는 한계입니다. 또한 상위법이 없는 조례는 각 개별 조항들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첫째,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학부모회의 설치 여부를 정관이나 규칙으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평준화 지역 학생들은 학교 선택권이 제한되므로 공사립 구분 없이 정해진 학교로 배정됩니다. 자녀가 배정된 학교가 학부모회를 운영하지 않는 사립학교인 경우 학부모는 학부모회를 통한 권한은 행사할 수 없습니다.


둘째, 학부모회 조례의 상위법이 없으므로 학부모회 임원의 자격에 제한을 두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학교운영위원의 경우 자격 조건에 국가공무원법이 준용됨에 반해 학부모회 임원 후보자들은 법률적 근거가 없어 결격 사유가 있는지를 조회할 수가 없습니다. 학부모회 임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긴 하지만 반대로 학교운영의 법적 엄격함에 비춰 권한과 권위를 부여하는데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학부모회 임원으로 학교운영에 참여하고 싶어도 학교운영위원회라는 법정기구를 넘어서는 참여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회 임원과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부모회 임원이 학교운영위원으로도 출마하여 겸임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부모회 임원으로도 출마하고,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으로도 출마하는 불편과 번거로움이 발생합니다. 제도의 미비함을 방치하고 학교의 수고에만 기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넷째, 학부모회 임원 선출을 위한 총회를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 선출시기와 달리 하게 되면 학부모회 총회(또는 학부모 전체회의)를 두 번 이상 개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에서 3월에 학교운영위원 선출과 학부모회 임원 선출을 위한 학부모총회를 개최합니다. 그나마 학부모가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부이긴 합니다만 학부모회가 별도로 총회를 하여 임원을 선출하고자 하는 학부모회도 있습니다. 또 학교운영위원과 학부모회 임원 중 결원이 생겨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총회를 다시 개최해야 하는데 선출을 위한 정족수를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학교운영위원 선출을 위한 학부모전체회의는 정족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소수가 참여해도 선출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성과 민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능한 거죠.


학부모전체회의 또는 학부모회 총회는 위원이나 임원을 선출하는 회의라기보다 학교 운영에 대한 학부모들의 총의를 모으는 자리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학교운영위원이나 학부모회 임원 선출은 총회가 아니라 학부모 전체 총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학부모가 모이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전자투표를 이용해 학교운영위원과 학부모회 임원을 선출하였습니다. 그리고 학부모들의 선거 참여율도 높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운영이 위축되었지만 역설적으로 학부모 자치의 민주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21세기 디지털시대에 학교운영위원과 학부모회 임원 선출을 위해 학부모 전체회의라는 아날로그적 틀을 계속 고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즉 온라인 투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서 총투표를 통해 학부모들이 그들의 대표를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학교운영위원회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합니다.



학교운영위원은 각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치기구에서 선출


또한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육공동체 각 주체들의 대표가 참여하여 학교운영에 대하여 심의하는 기구인 만큼 각 교육공동체의 실질적인 선출직 대표인 교직원회 대표, 학생회 대표, 학부모회 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각 위원들을 별도로 선출하는 형식적 제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물론 당장 법령의 제정이나 개정이 쉽지 않은 만큼 대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주도의 학교운영위원회 조례는 학부모회장을 학교운영위원회 당연직 학부모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학부모회 총회를 학교운영위원회 법령에서 말하는 학부모전체회의로 볼 수 있는 만큼 학부모전체회의(학부모회 총회)에서 선출된 학부모회장을 학교운영위원회 당연직 학부모위원으로 할 수 있도록 한 조례는 관련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법제처 자치법규 의견제시사례 의견 19-0337)



학부모회 법률 제정의 필요성


이처럼 몇 가지만 살펴봐도 학부모회 조례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그래서 학부모단체들과 학부모 활동가들은 학부모회의 법률 제정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여러 번 발의되었지만 번번이 후순위 논의로 밀려 자동폐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지방자치 분권화의 시대적 흐름에 맞춰 시도교육청과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학부모회 조직도 법률로 정할 것이 아니라 학교 자율로 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하고 싶으면 하고 하지 않겠다면 구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학교장의 권한이 막강합니다. 이에 반해 학부모들의 조직적 결속력은 약하고, 학부모회에 대한 인식도 낮습니다. 그리고 많은 학교에서 학부모들은 아직도 학교 운영의 보조자이자 지원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회를 학교 자율적으로 구성하도록 하자는 것은 학부모들에게 그 자율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장에게 학부모회 설치 권한을 주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학부모회에 형식적인 권한만 부여되어 있는 현재의 조례를 넘어 실질적인 지원과 강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법률 제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것이 현재의 학부모회를 기초부터 튼튼히 세우고 활성화하는 근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14화 학교는 교육공동체로 회복될 수 있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