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자원봉사에 대한 생각
학교참여와 자원봉사의 사이
학부모 자원봉사의 당위성
학부모가 학교에 가서 활동한다고 하면 으레 자원봉사하러 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과거부터 학교에 가는 건 대부분 안 좋은 일 때문이거나 학교가 요청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도 학부모가 학교에 자원봉사하러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알바를 쓰던, 연차휴가를 내고 가던 학교가 요청하면 학부모는 자원봉사를 의무처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 활동가들은 자원봉사가 교육주체로서의 학부모 참여 권리를 퇴색시키고 훼손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근거로 학부모의 봉사를 요구하는 걸까요? 학교의 자원봉사 활동 요청은 정당하고 당연한 것일까요? 학교가 생각하는 자원봉사와 학부모가 생각하는 자원봉사는 왜 다를까요? 또 여러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학부모 자원봉사가 활발한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무급노동과 자원봉사의 경계
학교에서 쓰는 자원봉사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유급으로 고용해서 처리해야 할 학교 업무를 무급 노동(또는 실비만 주고 사실상 고용)으로 편법 운영할 때 쓰입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재정 여건상 또는 교육청 지침 등에 의해 당장 필요한 인력을 고용할 수 없을 때 자원봉사라도 써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용이 필요한 인력을 자원봉사로 대체하도록 묵인, 방조하는 것은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과거처럼 교육재정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고용 문제를 이유로 편법적으로 자원봉사 형태의 인력을 운영하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학교의 부탁(?)으로 하게 되는 학부모 봉사의 대부분은 무보수이기 때문에 무급 노동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물론 모든 학부모 봉사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학부모가 하는 활동 중에는 무급 노동보다 자원봉사라는 말이 더 어울릴 때도 있습니다. 학교의 요청 없이도 학부모가 진심으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그럴 때 자원봉사라는 말은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시군구의 자원봉사센터에서는 이런 활동의 일부를 자원봉사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자녀를 위한 활동은 자녀에게 대가가 주어지므로 자원봉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통봉사나 생활지도 봉사 등은 일반적으로 학교 요청에 의해 이뤄지고 자원봉사로 인정됩니다. 그런데 이런 비자발적 봉사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우선 학교가 학부모에게 봉사를 요구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교 운영에 협조하는 의미로 요청은 할 수 있어도 학부모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봉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학교가 요청하면 사실상 의무적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은 직장생활로 인해 참여할 여유가 없더라도 참여하지 않으면 행여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지 모른다는 노파심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교사들도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원봉사자 모집과 관리 등은 교사의 업무가 아니니까요. 근거도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업무가 불필요하게 과중됩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자원봉사는 교사나 학부모 모두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따라서 직원을 채용하여 해당 업무를 맡겨야 합니다. 이런 문제제기로 인해 지금은 그나마 동원형 비자발적 봉사는 학교에서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긴 합니다.
자원봉사도 학교참여활동이지만
반면에 학부모의 자발적인 자원봉사 활동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학부모 자원봉사는 흔히들 알고 있는 학교 앞 교통봉사뿐만 아니라 전래놀이, 생태놀이, 댄스, 합창, 합주 등 재능기부 활동, 도서축제, 체육대회 지원, 바자회 개최 등 무수히 많습니다. 여전히 많은 학부모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합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왜일까요?
학부모 자원봉사 활동은 일반 학부모가 학교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입니다. 자원봉사 활동 과정을 통해 학교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참여하게 되고 활동 과정에서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교의 신뢰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긍정적 반응에 따른 보람도 큽니다. 이런 점 때문에 학부모들은 힘들고 어려워도 자원봉사 활동을 합니다.
물론 학부모 자원봉사가 학교 참여 활동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학부모가 학교 교육활동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내고 회의를 하는 등의 일은 봉사가 아닙니다. 학부모들은 이런 활동을 자원봉사라 부르는 것이 불편해합니다. 왜냐하면 교육주체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학교에는 학부모를 지원자, 자원봉사자로만 보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학교가 요청하는 활동만 하도록 하거나 학교 참여는 자원봉사 활동만 하도록 제한하는 등 자원봉사 외의 주체적 참여 활동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학부모를 교육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지원자로만 보려는 입장을 유지하는 한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입장 차이에 따른 갈등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학교 입장에서 학부모가 희망하는 모든 활동을 다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요청하지 않은 자원봉사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교육에 필요하다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개별 학부모는 다소 무리한 요청을 할 수도 있지만 전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학부모회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활동 요청이 있다면 학교는 교사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학교교육과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사와 학부모 모두 이런 절차와 과정을 거치는 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 자체가 교육 주체 간의 소통이며 교육공동체 운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호 존중과 소통, 협력의 문화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사업부터 함께 협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학부모 활동을 기대하며
거듭 말하지만 자원봉사가 학부모 학교참여 활동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또 자원봉사 활동 중 일부는 학교참여 활동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원봉사를 계획하고 집행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외면받던 자원봉사를 진정한 자원봉사로 제자리를 찾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학부모 자원봉사는 학교의 요청에 따른 수동적인 활동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학부모회를 비롯한 학부모 공동체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계획되고 진행되는 자원 활동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학부모 자원봉사가 교육 주체 모두에게 같은 의미의 이름으로 불려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