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와 교사가 좋은 관계를 맺으면 그것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전체적인 발달에, 무엇보다 그들의 교육 과정에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출처: 교보문고>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무엇이 아이의 행복인지, 무엇이 좋은 관계인지 문구 하나하나를 잘라내지 않고 저자가 쓴 의미 전체 그대로 이해한다면 학부모와 교사 누구나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인 교사이자 학부모인 하이데마리 브로셰의 [교사가 알아야 할 학부모 마음, 학부모가 알아야 할 교사 마음]에는 이런 기본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십수 년 전에 발간되었고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여전히 현실 교육에 필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소개해본다.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임에도, 더구나 독일 교육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마치 오늘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교육계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갈등은 문제를 해결할 출구는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교사는 학부모를, 학부모는 교사를 탓한다. 이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서로를 탓하기보다 상호 동의하는 부분부터 찾고 거기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면 어떨까.
교사이자 학부모인 저자는 앞서 인용한원칙을 갖고 서로를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원칙을 귀담아듣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이 교사나 학부모가 아닌 경우가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교사나 학부모 중 누구에겐가 책임을 지우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그 원인은 한쪽의 반감이나 무능력 때문이 아니다. 다만 학부모와 교사의 정서가 서로 다를 뿐이다. ‘내 아이’와 ‘내 학생들’을 생각할 때는 전혀 다른 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따라서 학부모 입장은 내 아이만 따로 구분해 보호하는 방향으로 더 기울어지고, 교사들 입장은 학생 전체를 생각해 각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둘 중 어느 입장도 틀리지 않았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필요하다. 학부모와 교사는 서로를 대체하기 위해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보다는 상호 보완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물론 삶의 가치판단이나 교육관에 문제가 있는 학부모가 있을 수 있고, 문제가 있는 교사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법적인 문제에 이르지 않는다면 교육관이나 삶의 가치판단의 문제만으로는 학부모가 교사를, 교사가 학부모를 바꿔달라거나 처벌해 달라 요구할 수는 없다.
이때 분명하고 구체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소할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들이 관계를 경직시키고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때로는 삶의 경험 속에서 체득한 선입견들이 문제 해결을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학창 시절에 교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실제로는 부당한 대우가 아니었을 수 있지만)고 느낀 주관적 경험이 있는 학부모는 자녀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졌을 때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반대로 사소한 일로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을 받은 경험이 있는 교사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학부모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태도를 그가 의도한 대로 해석하지 않는 것은 인간 본연의 특징이기도 하다. 때로는 모든 것이 매우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데는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으므로, 오해를 피하거나 없애고 싶다면 그냥 물어보면 된다."
"이러한 선입견들에 어떤 입장을 취하든 선입견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학부모는 "흥분 상태에서 무작정 학교를 찾아가면 안 되고,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교사 또한 "학부모들이 종속되어 있거나 하위에 있는 사람으로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사가 상호 평등한 입장으로 대하려고 해도 학부모는 스스로 낮은 위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의 원칙은 “물리적 폭력이든 상처를 주는 말을 통한 정신적·심리적 폭력이든 학교에서 자행되는 어떠한 폭력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통용된다."
때로는 칭찬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학교에서 발생한 문제를 지적하고 비난하는데 집중해 왔다. 이로 인해 교사와 학부모는 매우 위축된 상태다.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 한 일에 정말 만족했다면 적어도 그런 일에 대해 칭찬을 해야 한다고.
"학생들이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하려고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한 번은 실패할 위험이 있다. 그런데도 학부모들이 자기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교사의 활동은 유익한 결실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교사들마저 언젠가는 체념하고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녀가 늘 비판받고 비난받는 학생이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교사를 통해 자기 자식이 수학 성적은 나쁘고 지식을 습득하는 면에서는 게으르며 구술시험 준비는 소홀히 했지만, 가정교육을 잘 받아선지 예의가 바르고 남을 잘 도와주고 말을 예쁘게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의 영혼은 위안을 받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한 아이에게 그런 다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교사나 학부모는 부정적인 일로만 소통해서는 안된다. "가정과 학교 간의 정기적이고 신뢰에 찬 소통의 문화가 필요하며, 그것을 위해 학부모와 교사는 지금까지 보다 더 마음을 열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칭찬하는 문화는 소통을 활성화하는데 매우 유용하다고 할 것이다.
부모들은 자기 생각을 갖고 교실로 들어갔다가 교사의 생각을 갖고 다시 나온다
독일은 학부모의 교육참여를 위해 체계적인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 또한 이러한 운영 체계를 소개한다.
각 주마다 학부모의 학교생활 참여 규정을 두어 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규정이 있다고 곧바로 교사와 학부모의 소통 관계가 원활해진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저자 또한 규정과 체계로만 해결되지 않는 학부모의 교육 참여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물론 이런 모든 활동은 단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고,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이다. 대부분 학부모는 직장에 다니거나 다른 일들을 병행해야 해서 학교 행사에만 집중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라도 그런 학부모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람직한 학부모-교사 관계는 정상적인 시간 투자로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부모들은 자기 생각을 갖고 교실로 들어갔다가 교사의 생각을 갖고 다시 나온다”는 농담이 있다고 한다. 교사와 학부모간 소통의 현실적인 모습이 담긴 농담이리라.
이런 웃픈 현실을 넘어 교사가 학생을 더 잘 이해하고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학부모와의 정례적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마친가지로 학부모는 교사와의 상담으로 자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통해 가정에서의 자녀교육 방법과 역할을 지지받거나 정정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