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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행복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밥 먹고 대화하는 것, [행복의 기원]

by 오영

'행복'이 새삼 소중한 때


어지러운 나라 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행복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행복을 꿈꾸는가? 행복은 삶의 목적인가? 그리고 인간은 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지 의문이 든다.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행복의 기원]은 이러한 질문에 과학적 분석을 통해 '행복'의 진실을 말한다.



[닥치고 의대]가 행복을 가져다줄까


영어유치원에 가기 위해 4세부터 고시를 치른다. 집중력을 향상한다는 이유로 부작용을 감수하고 ADHD약을 복용하는 청소년들이 5명 중 1명이라는 기사를 보니 말문이 막힌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125514484?OutUrl=naver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126504406

강남 대치동에서 정점을 이루는 일부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욕망은 끝을 알 수 없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아이들을 망가뜨리지 못해 안달인가.


물론 일부 학부모들은 의대에 가면 그동안의 모든 고통이 행복으로 보상될 것으로 믿는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디고 얻은 성취와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을 위한 질문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이 꿈꾸는 행복한 삶을 위해 교육을 한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떤 것이 행복인지 모른 채 맹목적으로 행복을 갈망해 왔다. 안정적인 직장과 결혼, 편안한 노후를 위한 경제적 여유가 행복을 위한 근거였고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였다. 아이들에게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당장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해야 한다고 믿었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의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이다. [행복의 기원]에서 서은국 교수는 말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행복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려고 하는지, 또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이미지 출처: 21세기북스>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인간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은 최고의 선'이라고 말한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행복은 삶의 목적이며 이유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 서문에서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이 세상과 삶에 여러 가지 의미 부여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다." 심지어 음악과 미술과 같은 창의적 활동도 그 본질적 의미는 "생존과 번식"에 있다고 한다.


모든 동물은 생존을 위해 "쾌快 혹은 불쾌의 경험"을 구분하고 만들어낸다. "쾌와 불쾌의 감정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주는 ‘생존 신호등’"인데, 불쾌의 감정은 "해로운 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빨간 신호등’"이고, 쾌의 감정은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일에 계속 매진하라고 알리는 '파란 신호동'"이다. 즉 행복의 핵심은 불쾌의 감정보다 쾌의 감정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쾌, 불쾌의 감정이 클까? 저자는 그것이 "사람과의 만남"에 있다고 본다. 인간은 "한 개체로서는 그다지 탁월한 능력이 없지만, 서로 돕고 나누고 이용하는 복잡한 사회적 능력 덕분에" 지구를 정복했다. 즉, "사람이라는 동물은 극도로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사람에 '중독'되어" 있고,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희로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니까.


그런데 많은 연구를 통해 행복의 경험이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밝혀졌다. 또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먼저 "삶의 조건"과 행복이 연관성이 적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출세 등을 행복의 기준과 조건으로 생각하지만 부자들이 늘 행복한 감정이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도 행복의 감정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놀라운 '적응'력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그런데 적응이라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다시 쾌락을 위해 열심히 생존 활동을 할 것이므로.


결론적으로 행복의 감정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잦은 "빈도"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행복의 감정을 좌우하는 또 한 가지 요인은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에 있다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 성격이 외향적이던, 내향적이던 '생존'을 위해 사회적 경험을 원하는 것은 같다. 다만 연구결과로는 외향적 성격일수록 행복지수와 정서적 안정성이 높다고 한다.


"콜로라도 대학의 리프 반 보벤Leaf van Boven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Van Boven & Gilovich, 2003)." 즉 행복의 감정이 사람들과의 사회적 '경험'을 할 때가 물질 구매보다 오래도록 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향성, 외향성을 넘어 국가별 문화적 특성에 따른 행복의 정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예상했겠지만 한국과 일본은 경제 수준이 낮은 중남미 국가들보다 행복감이 낮다고 한다. 왜냐하면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Diener, Diener, & Diener, 1995)"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Inglehart, Foa, Peterson, & Welzel, 2008)."


그런데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 과도하게 타인을 의식하는 문화, 물질주의적 가치가 지배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획일적인 사고는 개인의 자유감을 저하"시키고, "과도한 타인 의식"은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을 때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고, "물질주의"는 "외형적인 증거물"이 행복의 척도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저자는 "경제적인 부"보다는 "사회적인 부"가 행복과 보다 밀접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때 말하는 사회적인 부는 "어떤 필요나 목적에 따른" 사교 모임의 양이 아니라 몇 명의 "좋은 사람들과의 즐겁고 자유로운" 지적인 사회적 모임을 말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와 같이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다소 행복을 추구하는 쾌락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사회적 관계도 윤택해지고, 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되기 때문이다.



지금 어른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행복'


저자는 결론에서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움식을 먹는 장면"이라고 말한다. 결국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는 이러한 장면이 내 인생에 가득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는 것이다.


좋은 직장, 값비싼 자동차와 아파트, 옷 등이 줄 수 있는 행복의 감정은 강도는 셀 지언정 유통기간은 매우 짧다. 저자의 말대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일을 자주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년기, 청소년기에 행복한 삶을 경험한 학생들이 어론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살 확률이 높다. 행복을 유보하고 고통을 경험한 기간이 긴 아이일수록 어른이 되면 행복에 대한 보상심리와 강도가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강도가 높은 보상은 행복의 기간이 짧기에 다시 불행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감이 지속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가질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다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아이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자. 행복을 경험하게 하자. 그것이 아이가 미래에 꿈꿔야 할 행복임을 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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