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준 은혜나 의리? 주인의식? 과연 생길까?
한 병원이 있다. 직원 둘이 접수처에서 상담을 한 다. 길 건너 다른 병원이 들어오고나서 매출이 심각하 게 줄고 있는 상황. 접수처 직원은 줄어든 환자 덕에 남 는 시간이 생겼다.
이 위기에 어떤 행동을 할까? 돈을 받지만 남는 근무 시간을 병원의 매출을 반등시키기 위해 고민할까? 아니라면 재빠르게 구직 사이트 접속해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곳을 검색하고 있을까?
피라미드 꼭대기, 위에도 옆에도 비슷한 직책이 없는 대표자가 외로워지는 순간이다. 호황이 오면 성과를 나 누고 싶어 하지만, 불황이 오면 그 책임과 손해는 피라 미드 꼭대기에 서있는 자 홀로 감당해야 한다.
카페에서 알바를 할 때 들어온 학생의 논리다. 옷 갈아 입고 준비하는 시간을 위해 매일 10분씩 일찍 오니 60분의 시급을 안분해서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그분은 알바이기 때문에 당연히 실수도 했고, 실수의 몫은 계 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회사와 개인은 서로 칼같이 계산하며 지내야 할까? 역으로 생각해보자. 그냥 봐서는 보지 못하는 달의 뒷 면을 보자.
회사에서는 맡은 기술을 배워 나갈 수 있다. 그것도 돈 을 받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실수를 하면 회사가 돈을 대신 지급한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고마운 단체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성장한 후 가치는 이직을 통해 인정받을 수도, 새로운 연봉 테이블로 보상받을 수도 있다. 내가 일한 시간 대비 받은 액수를 돋보기로 확대할 것이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목적지가 얼마나 빛나는지, 망원경을 통해 별을 관측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꼭 오래 근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관측한 별이 빛나지 않는다면 즉, 비전에 마음을 뺐기지 않는다면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서는 방법도 좋은 선택지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머릿 속에서 기여도 대비 받는 돈을 매일 계산하는 그들에게 계산이 딱 맞지 않아도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오차 범위를 제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