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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Apr 12. 2021

쓸만한 경험

조기 지진 대피 훈련

모든 경험이 쓸만하진 않다.


어떤 이들은 모든 경험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며 특히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는데, 그것처럼 무책임한 개소리도 없다.


젊어서 고생해도 늙어서 고생 안 한다는 보장이 없고, 상처만 주는 경험들이 도처에 널렸다. 고로, 쓸만하지 않은 경험도 있다.


과테말라에서는 쓸만하지 않은 경험이 많았다.


예를 들어 친척집에서 일주일 만에 쫓겨난다던지

하드코어한 등교길때문에 졸업 일수가 부족할 뻔했다던지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사람들의 차를 무작정 탄다던지


그래도 긍정적 마인드를 최대로 끌어올리면 나름 유의미한 경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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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와 사이가 좋지 않던 이모부(과테말라 옥탑방 살이 참조)는 흥도 많고 말도 많은 사람이었다.


이모부의 가정생활 태도와 무관하게 나는 늘 나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 붕- 떠있는 듯한 이모부가 싫지 않았다. 아마도 그 시절 유쾌한 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나에게 실없는 소리라도 에너지 넘치게 떠들어대는 그 모습이 나름 엔터테이닝 했던 것 같다.


아주 가끔 이모부를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그는 과테말라의 역사, 환경, 멋진 여행지 등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그중 지진에 대한 이야기도 해줬다.


과테말라가 환태평양조산대인 '불의 고리'에 속한다는 건 이미 학교에서 배운 정보지만, 뉴스에서나 봤을 뿐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나에겐 지구의 자전이나 중력처럼 느낄 수 없는 사실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모부가 아무리 금태 안경을 자꾸 치켜올리며 콧바람까지 내뱉으며 설명을 해도 와 닿지 않았고, 지나가는 길에 길이 푹 꺼진 곳을 가리키며 지진의 여파라고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모르는 경험이니 용감하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과테말라 살이를 맥시멈으로 다이나믹하게 만들어 주려고 작정한 신의 뜻에 따라 지진은 몇 번씩 찾아왔고,


그렇게 경험력은 코로나 이후 주식장처럼 한없이 우상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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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 엄마, 남동생 우리 셋은 '이 밤이 지나면 한국에 돌아갈 수 있는 날이 하루 더 짧아지겠지' 하는 꿈을 꾸며 자고 있었으리라.


새벽 2-3시쯤이었을까. 바닥이 미세하게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나처럼 예민한 엄마도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엄마.. 바닥.. 이상했지?"


"아이고. 이게 지진인가 보다!"


엄마는 워낙 겁이 많고 과하게 놀라는 성격이라 나는 좀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그때

벽이 미세하게 드르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테이블 위의 플라스틱 컵이 혼자 왼쪽으로 덜덜덜 거리며 밀려났다.


그제야 나는 이모부의 붕-뜬 이야기들이 떠올랐고,


"지진... 맞나 봐.... 어떻게 하지...."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아들! 일어나 일어나!! 딸, 빨리 나가! 당장!!"


엄마가 소리를 쳤고, 나는 눈을 반쯤 뜬 동생을 강제로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곧 엄마가 뒤따라 나오는데 우리가 덥던 이불을 부둥켜안고 매일 들고 다니는 작은 가방을 손끝에 걸치고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얼음! 한 채로 20분쯤 서 있었을까... 의외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동네 어느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안도의 마음도 들었지만, 이불을 둘러 쓰고 눈만 깜박이는 우리가 약간 뻘쭘했고, 이모부는 역시 허풍이었나 하며 실망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잠은 들지 못했고, 엄마는 작은 여행 가방을 하나 꺼내어 일사불란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여권, 비상약, 현금 약간, 얇은 외투들 등 가방에 다 집어넣고는 우리에게 일렀다.


"혹시 또 지진이 나면 이 가방만 들고 빨리 나가서 대피해. 알았지? 그리고 이 가방은 항상 머리맡에 두고 자자."


뜬 눈으로 아침이 밝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젯밤에 지진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다만, 강도가 그리 세지 않아서 그저 '음.. 약한 놈이군. 계속 자면 되겠군.' 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녁 잠들기 전, 지진은 다시 왔다.


이번엔 어제 새벽과 달랐다.


벽이 어제보다 강하게 드드드드 거리며 눈으로도 진동이 보였고, 테이블 전체가 덜덜 떨렸다. 느낌상으로는 집 건물 전체가 약한 파도에 출렁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계획한 대로 비상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동네 주민들 몇몇이 보였고, 우리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길래 망설이지 않고 따라갔다. 그들은 도로를 벗어나 동네 뒤편에 있는 밭으로 가서 동태를 살폈고, 맨날 차를 얻어 타는 우리에게 괜찮다고, 안심하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상태라고 보면 된다.


지진은 꽤 강했다.


다만 다행히 과테말라 시티는 일정 지역 원주민들 집이 문제가 좀 생긴 것 이외에는 큰 타격은 없었는데, 다른 지역은 도로가 갈라지거나 싱크홀이 생기기도 했다는 걸 나중에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활자로 배운 지식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역시 백 마디 잔소리보다 직접 겪어야 정신 차린 다는 것을 수긍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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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후


해외 분쟁 때문에 미친 듯이 출장을 다니던 시기.

젠장. 팔자 도망은 못한다더니 

‘불의 고리'에 있는 칠레를 1년에 세 번이나 가게 되었고.


1년중 3주나 산티아고 사무실에서 일할 줄이야


산티아고에서 시차와 격무로 호텔 침대에 쓰러져 있을 때


지진이 왔다.


침대가 울렁거리고 벽에서 역시나 드드드 소리가 났다. 눈을 반쯤 뜨고 사이드 테이블과 책상을 보니 램프도 노트북도 제자리를 지키며 미세하게 떨리는 정도였다.


'.... 나갈까.... .. 그냥 자도   같은데...  몰라.. 그냥 있어.. 너무 피곤해.'


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는 순간 호텔방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고, 함께 출장을 온 후배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이거 뭐예요? 이거 지진이에요?? 어떻게 어떻게 웬일이야!!!"


"응. 지진 맞아."


"어떻게 해요?? 어디로 가요? 뭐 가져가요??"


그래. 놀라지.

너도 활자로만 배웠으니까.


"음. 그냥 자면 돼. 상황이 바뀌면 내가 먼저 연락할게"


후배는 좀 황당해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잘 잤다.



모든 경험이 쓸만하진 않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생각을 깨우고.

마음에 방탄유리를 끼워주기도 하며.

피곤한 출장 중에 단잠을 자는 강단을 주기도 한다.


빛나지 않던 시절의 어떤 경험이

아주 오랜 후에 옅게라도 빛을 낸다면

그건 쓸만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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