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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Apr 24. 2021

타코와 브리또는 잘못이 없지

멕시칸 음식을 싫어하는 이유


과테말라 현지인들의 기본적인 주식은 또르띠아(Tortilla)다.


옥수수가 음식의 주된 재료였던 마야문명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흔히 ‘멕시칸 음식'이라고 부르는 요리들의 근본은 또르띠야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한국인의 '밥'처럼.



요즘처럼 먹는데 집착하는 시대를 본 적이 없다. 코로나 전부터도 '먹방'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방구석 즐거움을 찾는데 몰두하다 보니 점점 더 '먹는 것'에 대해 진심인 시대다.


전쟁통이나 보릿고개처럼 없어서 집착했을 때보다, 오히려 너무 많은 와중에 '더 잘 먹어 보겠다'는 집착은 묘한 경쟁심리까지 부추겨 '먹는 시대'를 더욱 강하게 견인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잘 먹는 자'가 인기가 높고, 예능의 컨셉과 무관하게 모든 예능에서는(혹은 모든 방송에서는) 누군가 요리를 하거나, 특이한 음식을 먹거나, 아님 그냥 무지하게 많이 먹거나, 그렇게 계속 의무처럼 먹어댄다.


뭐 내가 하고자 했던 얘기에서 조금 옆길로 샛지만,

아무튼 그만큼 먹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고,

잘 먹자!라는 의지는 현재의 행복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잘 먹자!라는 삶의 의지에는

싫어하는 것은 먹지 않겠다 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나는 타코, 브리또 등 흔히 멕시칸 음식이라고 하는 것을 싫어한다.

.

.

.


1999년, 주말마다 동생과 함께 띠깔 푸투라를 배회하며 이모의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를 기다렸다.(과테말라 무장강도의 이중생활 (brunch.co.kr) 참조) 식당이다 보니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 가장 바쁠 수밖에 없고 바빠야 한다.


그러니 엄마는 나와 동생의 끼니를 챙겨주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가끔은 점심시간이 한창 지난 후에 이모네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전쟁통 같은 부엌에서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는 것이 눈치 보여서 대부분은 나와 동생이 알아서 해결했다.


쇼핑몰 푸드코트는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게 생겼다.


맥도날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점을 시작으로 식당가를 삥- 둘러서 각종 음식들을 팔고 있고, 이모네 식당은 그중 제일 끝자리에서 미국+한국식 치킨 덮밥, 데리야키 덮밥 같은 '고기밥'종류를 팔았는데 인기가 매우 좋아서 늘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럴수록 엄마는 더 바쁘고, 우린 더욱 알아서 점심, 저녁을 찾아 헤맸다.


Taco Bell


과테말라 생활 초기에 내가 가장 흥미를 가졌던 식당이다.


멕시칸 음식의 맥도날드로 여겨지는 Taco Bell을 과테말라에서 처음 먹어봤다.


크런치한 타코를 와그작 씹으면 과자처럼 부서지면서 속에 있는 야채와 갈린 고기와 독특한 소스가 입안에 쏟아져 내리는데, 맛있었다! 식사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간식을 먹는 느낌인 것도 좋았고, 옥수수 반죽도 달큼했다. 그리고 부리또(Burrito), 캬 이게 또 색다른 만족감이 있었다. 부드러운 옥수수반죽 랩이 쫀쫀해서 식감이 좋고, 안에 내용물은 타코보다 훨씬 많고 알찼고, 타코처럼 부서지지 않으니 좀 더 깔끔하게 먹을 수 있었다.


(리마인드, 이건 99년의 상황입니다. 2021년 타코벨 내돈대산 후기 아님 주의)


더욱이!! 가격이 대박이었다. 푸드코트 전체에서 가장 저렴했다. 특히나 타코는 세트로 사지 않아도 타코 한 조각만 살 수도 있었기에, 타코 한 조각의 가격보다 더 싼 푸드코트 음식은 없었다. 버거 단품과는 비교도 안되게 쌌으니.


그렇게 한동안 Taco Bell에게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두 달째 주말에 Taco Bell을 먹다 보니 남동생이 먼저 반기를 들었다.


"누나, 또 타코 먹어? 나 맥도날드 먹고 싶은데..."


엄마는 주말마다 최소한의 용돈을 주었다. 말이 용돈이지 정말 최소한의 밥값이었지, 게임이라던지 쇼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라도 어떻게 하루 종일 쇼핑몰을 배회하고, 숙제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밥'만 먹을 수 있나. 우리는 12살, 18살인데. 나는 참더라도 동생은 중간에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먹어야 버티지.


그런 계산으로 주말 용돈을 사용하려면, 점심, 저녁 중 한 끼는 이모네 식당 밥을 얻어먹던지, 아님 한 끼를 과감히 버리고 정말 먹고 싶은걸 한 끼만 먹던지, 그도 아님 두 끼 모두 Taco Bell에서 해결하던지. 그런 상황에 동생은 반기를 들었고. 나는 직감적으로 맥도널드는 무리라는 걸 알았고.


"맥도널드? 그거 저번에 이모부가 사줘서 먹었었잖아. 누나는 타코 먹고 싶은데."


라는 거짓말이 나왔다.


나보다 백만 배쯤 순하고 착한 동생은 누나가 먹고 싶다니 바로 수긍했다.


 날부터 나는 타코가 너무 맛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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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주에 동생이 다시 한번 말했다.


"누나... 우리 오늘은..... 저~거 먹을까....?"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마른 동생이 매우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다른 식당을 가리킨다. 피자집이다. 피자는 한 조각을 팔지 않는다. 한 판은 꽤 바싸다. 저걸 시키면 저녁은 어떻게 해서든 이모네 식당 밥을 먹어야 하는데.... 도무지 이모 눈치를 맞추며 엄마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다가 엄마가 이모에게 한 소리 듣는 모습은 볼 자신이 없었다.


"야. 너 한국 가면 이거 진짜 못 먹어. 한국에 피자는 있지? 너 한국에서 부리또 먹어봤어?"


"......... 아니...."


동생이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에 내가 마치 몹쓸 짓을 한 범인이 된 것처럼 심장이 뜨끔뜨끔하고, 손발이 안절부절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곧 성인이 되는 18살이니.... 동생 손을 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소리로 다시 말했다.


"누나가 엄청 잘 알잖아~ 진짜야. 저거 별로 맛이 없어. 진짜야. 그리고 이따가 누나가 맥도날드 소프트 아이스크림 사줄게. 피자 먹으면 아이스크림은 못 먹어... 어때? 아이스크림 먹는 게 더 좋지?"


"응! 소프트 아이스크림. 초코시럽 묻힌 거!"


단순한 놈....


나이로 누르는 거... 엄청난 꼰대력인데.

 그렇게 18세 꼰대가 됐고, 그렇게 또 잘 넘어갔고.


그즈음 되니 Taco Bell 간판만 봐도 화가 날 지경이 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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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를 떠난 후 나는 Taco Bell을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사회생활을 하며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 된 어느 날, 회사 근처 쇼핑몰이 새로 지어졌고, 우리의 점심 메뉴를 풍족하게 해 줄 식당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그중에는 타코벨의 럭셔리 버전인 온더보더(On the Border)도 들어왔다.



타코벨은 사실 한국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해서 괜찮았지만, 아... 이 온 더 보더는 일단 외관도 세련되게 이국적이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고급 음식의 느낌이 충분했으며(아이러니하게도), 무엇보다 여자 동료들은 대부분 여기를 너무 좋아했다는 게 문제였다.


처음 한두 번은 "온더보더? 아... 난 예전에 멕시칸 너무 많이 먹어서 별로 먹기 싫은데..." 하며 조심스레 거절을 했고, 그럼 또 착한 나의 동료들이 "그럼 다른 데 가도 돼~"라고 해줬기에, 타코와 부리또에 대한 나의 반항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모두 알지 않는가. 사회에서 두리뭉실 지내려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티 내지 않아야 한다는 걸.


그렇게 몇 번 온더보더를 가게 되고,

이게 맛있다는 걸 세치 혀가 모를 리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내 생일에 온더보더에서 생파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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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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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감정을 부르고 감정은 다시 기억을 증폭시킨다.


타코가 그 시절의 서러움, 미안함, 분노의 스위치를 켜는 것이 아니라, 수정 불가인 과거 기억에 집착하는 내 고집이 그 스위치를 자꾸 On으로 유지하고 싶은 것일 테다.

그것이 Off가 되면 1999년의 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끼면서 말이다.


직업의 속성을 살려 접근해 보기로 했다.


과거의 타코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과 그것이 부르는 감정, 현재 좋은 동료들과의 점심시간과 골라 먹을 메뉴의 증가, 이것들의 이익을 비교형량 해보니 단연코 후자의 이익이 크다. 마치, 코로나 백신에 각각의 위험성이 있지만, 맞았을 때의 이익이 더 크기에 전 세계가 일단 맞고 보기로 한 것처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마흔 즈음.


'난 절대 멕시칸 음식은 먹지 않지!'라는 스위치를 이제야 Off 시킨다.


과테말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이었던 건,


타코와 브리또를 먹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내가 행복하길 바래서였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의 행복에 과거의 재를 뿌리지 말자.




덧) 온더보더 정말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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