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망별 May 06. 2021

손가락이 부러져도 마음은 설레고

아무것도 아닌 친절이 주는 위로


방과 후 축구교실이 시작되었다.


앞서 밝힌 대로 그 목적은 졸업여행 자금 조달에 있었다.


우리 반 남자애들은 당시 별명이 Army Boys였을 정도로 남자다움의 상징 같은 녀석들이었다. 그러니 나 같은 아시아인 여자애가 '축구교실'에서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축구교실은 우리 학급 모두가 골고루 참여하여 자금 조달을 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으므로. 나도 뭔가는 해야 했다.


축구교실의 리더가 된 Norman은 나에게 가장 저학년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공차기를 해 주면 된다는 임무를 주었다.


"Kids are going to kick the ball toward you, then you just have to receive it with your hands like this. It is very easy but important!"


Norman은 아빠가 미국 백인, 엄마가 과테말라 현지인인 친구로 피부색은 엄마를 닮아 캐러멜이었고, 키가 크고 축구를 잘하는 몸매를 가진 유머 넘치는 친구였다. 엄마는 어려서 돌아가셨고, 선교사인 아빠와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나는 그 여동생과 친하게 지냈는데. 이유는, 매우 교활하게도, Norman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Norman이란 녀석이 학교에서 워낙 운동을 잘하는 까닭에, 그 녀석이 배구부를 했던 학기에는 오로지 그 친구를 더 자주 봐야겠다는 유치하고 순수한 일념 하나로 평생 배구는 본 적도 없는 내가 여자 배구부에 자진 가입을 했고.


서브 한 번을 제대로 못해서 매 시합마다 벤치에 앉아 있었지만. 훗. 그것이 나의 목표였기에 매우 뿌듯했으며.


남자팀 시합을 볼 때면 Norman이 공을 잡을 때마다 내 심장도 같이 부여 잡히는 줄 알았다. 하, 순수함이란. 이제는 심장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만큼 무뎌졌는데 말이지.


아무튼 Norman은 나의 첫사랑이었다는 이야기고. 과테말라가 그렇게 싫었는데, 세미 과테말라인을 좋아한 것은, 역시 인생은 모순 투성이라는 것의 참된 가르침이었달까.



축구 교실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Norman이 하라면 해야지! Just!! 받기만 하면 된다잖아. 쉽지만 중요한 일이라잖아. 이것은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 내게 준 첫 번째 임무잖아. 너 - 무 잘하고 싶잖아.


드디어 방과 후, 운동장에 나갔고.

 

당시 학교 운동장


1학년 꼬마 몇 명이 나를 마주하고 멀찍이 섰다.


뻥- - -


꼬마가 차는 공치고는 '어?' 하는 공이 내게 날아왔고.



손을 뻗어 공을 잡았는데....


"아아아아악!!!!!!!!!"


나는 왼손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태양이 너무 뜨거웠고, 꼬마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2초 사이에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온 것 같았다.


운동장 반대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Norman이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나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욱신욱신 고통스러운 왼손을 들어 보였는데.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삐죽 어긋난 손가락 마디를 확인한 나는 그제야 엉엉 울기 시작했다.


Norman은 옆에 다른 친구에게 빨리 얼음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가져온 얼음주머니를 내 손에 감아주고는 나를 데리고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차분하게 진정시키고는, 자신의 아빠에게 전화를 하더니 내 상황을 알리고 빨리 pick up을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녀석이 우리 엄마에게 전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아빠를 부른 이유는 우리 집엔 차가 없어서 내가 매일 아침 위험한 길을 걸어서 등교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 나이에 누구라도 할 법한. 친구가 다쳤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언어도 사람도 문화도 모두 낯선 곳에서 의지할 곳 없이 꾸역꾸역 독하게 매일을 버텨내던 여리고 감정이 풍부한 열여덟 한국 여자애였던 나에겐,


그 날의 그 친구의 모든 행동과 도움은 위로 같았다. 다친 손가락이 아닌 내 시간에 대한 위로.


미치도록 추운 겨울밤 건조한 칼바람이 부는 황량한 도심 한복판에서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지도 못한 채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는 아이에게, 손에는 작은 핫팩을 쥐어 주고, 발걸음을 천천히 함께 떼어 주고, 바람이 점차 옅어지는 골목으로 안내해서, '여기서 기다리면 한결 나을 거야.'라고 친절히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시간을 통째로 품어 주는 것 같았다.


새끼손가락을 희생하고 얻은 반짝반짝한 추억은 한없이 여린 소녀 시절의 풋풋한 에피소드였고, 그와 동시에

한 치 앞을 보기가 어려운 캄캄한 과테말라 살이에 빛으로 기억되는 사건이기에 너무 감사하다.



나의 전쟁 같던 시절에도

사랑은 피고, 지고, 설레었고.

그 설렘보다 더 큰 위로도 있었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


당신에게도 사람이 위로가 되기를.


이수군 작품


덧) 그 새끼손가락은 이후 정밀한 검사를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붙었고, 결국 휘어진 손가락으로 영원히 남았다. 치료는 제때 확실히 합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