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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May 28. 2021

엄마가 또, 쫓겨났다.


과테말라 부잣집에서 쫓겨난 후,

우리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또 쫓겨났다.


삶이란 놈은 사이코패스다. 아프다는 사람한테 아무렇지 않게 다시 주먹을 날리고,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내놓지 않으면 호랑이를 보내겠노라고 으름장을 놓기 일쑤다. 분명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분명하다. 적어도 우리의 과테말라 시절에는 그랬다.


이모의 부잣집에서 나와 옥탑방에 살긴 했지만, 엄마는 이모네 식당에서 일을 했다. 함께 사는 것은 불편해도 함께 일하는 것은 아마 서로 win win이라고 판단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모네서 일하는 엄마는 늘 마음이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지랖도 넓고 목청에 비해 마음은 쓸데없이 여린 엄마는 받는 돈의 액수와 무관하게 여동생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어 안달이었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식당 종업원들과 협업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당시 마음에 천불을 담고 사는 여동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살피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아등바등. 안절부절. 전전긍긍.

그렇던 어느 날, 예고 없이 폭탄이 터졌다.


위키미디어


그날이 주말이었는지 주중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내가 그 식당이 있는 띠깔푸뚜라(과테말라 무장강도의 이중생활 (brunch.co.kr) 참조)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 간의 문제의 발단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날 식당에 이모부가 등장했고, 분위기가 험악했고, 중재에 나서던 엄마에게 이모와 이모부 양쪽의 화살이 쏟아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감정을 주체 못 한 이모는


"언니 너! 더 이상 우리 식당에 나오지 말아라!"


라는 말을 휙- 던졌고, 그 말은 그 자리에 있던 현지인 종업원들과, 이모네 운전기사와 이모부의 머리 위를 한 번씩 튕겨 엄마의 품에 툭- 떨어졌다.


감정에 매몰된 사람은 주변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감정이 폭발했을 때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선택'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내가 식당 뒷문을 통해 주방에 들어갔을 땐 이미 엄마는 그렇게 해고를 당한 상태였고, 자본주의가 낳은 충성심으로 무장한 종업원들과 운전기사는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인식하고는 엄마와 나를 향한 눈빛에 색안경을 탑재했다. 


사회생활은 그렇게 하는 거겠지. 프로들이다.


엄마와 내가 짐을 챙겨 주방을 나오려는 찰나

이모네 운전기사가 엄마  밑에 대파를 집어던졌다.

 

요즘은 금쪽인 대파를 감히!!


빨리 꺼지라는 건지, 그간 우리에게 품었던 본인만의 불만을 '이때다!'싶어 표출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황당한 상황은 어른들 일에 조용히 착한 아이 행세를 하려던 나의 심기에 기름을 부었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빽-- 소리를 지르고는 엄마를 잡아끌고 그곳을 떠났다.

.

.

.


엄마의 실직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큰 타격이었다. 순간 가족 중에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가 된 것이니까. 


다행히 그 황당한 시기가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교회에서 우리 사정을 알고는 한국 식당을 운영하시는 마음 좋은 집사님께서 엄마를 자신의 식당 주방 보조로 취직시켜 주셨다. 교회 사람들이 별로다 싶다가도 이럴 땐 또 그래도 역시 교회뿐인가 싶고, 인간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새로 취직된 그 식당은 한국식 고깃집이었다는 점도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그 덕에 엄마는 남은 고기를 종종 가져왔고, 그 외 한국 음식이나 반찬들도 맛볼 수 있었다.

.

.

.


참 복잡 미묘했다. 그 시절은.


엄마는 어땠을까?


얼마나 마음이 시큰하고, 머릿속은 어질 하고, 남보기는 낯부끄러웠을까. 좁은 한인 사회 안에서 누가 누군지, 어떻게 사는지 속속들이 다 아는 해외 한인 사회의 가십 속에서 엄마는 정말 괜찮았을까?


당시 나의 감정이란 어린 마음만큼 단순 명쾌했지만, 마흔 즈음 살고 돌아보니 그때의 엄마의 마음은 얽힐 대로 얽혀버린 실타래 같았겠구나 싶다.



누구를 질타하고,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감싸주어야 할지 엉망진창으로 얽혀버린  실타래를 머릿속에 구겨 넣은 채로 육체는  없이 고달파야 했던 엄마를....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할  같지만. 감히 쉽게 위로할 수도 없다.



삶이라는 사이코패스를 대하려면,


우리의 내면이 더 넓고, 부드럽고,

동시에 견고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더라도 

내가 그것을  보듬고 품어 버려 

 마음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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