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졸업여행이다.
목적지는 콜롬비아령 카리브해의 작은 섬,
San Andres Island
이 아름다운 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과테말라에서 출발하여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1박을 하고 보고타에서 다시 섬으로 들어가는 경비행기(최대 수용 인원이 30명 진짜 경비행기, 엄청 무서움....)를 타야 했다. (지금은 여러 루트와 저가 비행사가 다양한 것 같다.)
보고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한 도시', '범죄의 도시'로 인식될 것이다.
응. 당신이 맞다. 매우 맞다.
보고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였다. 살인, 무장 강도, 납치, 그리고 가장 유명한 건 당연히 마약 카르텔이다.
콜롬비아는 4개의 거대한 마약 조직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고, 그들이 하나의 특별한 사회 계급(class)을 형성할 정도의 막강한 힘이 있었기에 나라 전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도 했다. 콜롬비아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주의를 주며, 비행기 시간 때문에 보고타에서 1박을 하는 것일 뿐 보고타 관광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보고타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방탄차'를 타고 이동하며. 차 안에서는 절.대.로 창문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방탄차? 영화에서 막 CIA나 FBI 요원들이 타고 다니고, 대통령들이 타고 다닌다는 그 방탄차?
그럼, 보고타에 총격이 난무한다는 말이잖아. 우리 같은 관광객도 타깃이 된다는 말이잖아.
솔직히 무섭기보단 신선했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모험가가 된 기분이라, 선생님이 설명하는 리스크에 대한 현실적인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보고타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생님이 주의를 주지 않았던 위험이 발행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위험.
공항에서 우리는 선생님들의 인도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짐을 찾아 입국심사대로 향했고, 선생님이 제일 먼저 입국 심사를 받으면서 미국 학교 학생들이 졸업 여행을 왔다는 목적을 설명했다. 그 뒤를 이어 반 친구들 몇 명이 입국 심사를 받았고, 내 차례가 왔다.
여권을 내밀자, 입국심사관이 잠깐 멈칫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스페인어로 가만히 있으라고 진지하게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왜?
내 여권에 문제가 있나?
사진이 규정에 안 맞나?
나는 살짝 놀라긴 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마 미국 여권을 주르르 받아 보다가 갑자기 다른 색 여권을 받자 잠깐 확인하는 것이리라 생각했고, 미국 사람들에게 유독 친절하고 함부로 하지 않는 중미의 문화를 이미 익힌 터라 선생님들이 알아서 하리라 믿었다.
잠시 후 심사관이 돌아왔고,
제복을 입은 사람 둘을 달고 왔다.
나에게 스페인어로 마구 떠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두려워졌고.
담임 선생님이 필요했다.
선생님을 불러야 한다고 얘기하자, 그들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눈을 희번덕 거리며 나에게 따다다 쏘아 부쳤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고.
큰 소리로,
"Necesito mi profesora!(선생님 필요하다고!)"
라고 외쳤다.
그들은 결국 내 뒤에 입국심사를 대기 중이던 반 친구가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을 불러주었다. 나쁜 놈들... 나도 분명히 똑바로 말했는데... 내 스페인어가 그렇게 이상했나.
.... 하는 억울함도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마친 담임 선생님이 내게 오시더니,
"네가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설명을 했는데도 막무가내네. 일단 저 사람들이 안쪽에 사무실로 널 데리고 갈 거야.... 너무 걱정은 말고........”
선생님은 말을 이어 갔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 머릿속은 온통
북한 사람....?
북한.... 사람이라고...??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데려갈 거야...?
데려.... 갈 거야??
데려........... 갈 거야???
이게 무슨 황당무계하고 어이없는 상황인가.
나는 분명 대한민국 여권을 줬는데,
분명히 Republic of Korea라고 쓰여 있는데,
북한 사람이라니.
공항 경찰들은 곧 나를 출입국 사무실로 데려갔다.
나는 “Republic of Korea is South Korea..."라고 계속 중얼거렸고, 분단국가의 현실에 슬픔 아닌 극명한 분노가 치밀었고, 보고타 Immigration의 무식함에 기가 찼다.
그 사이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모두 입국 심사를 마쳤고, 내가 나오길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1시간이 흘렀고.
나는 계속 갇혀 있었다.
선생님도 그곳에는 들어오지 못했기에 나는 오롯이 콜롬비아 경찰들에 둘러싸여 혼자 견뎌야 했다.
2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그들은 내게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결국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나로 인해 모두가 졸업 여행을 시작도 못하고 한없이 공항에 대기 중인 사실이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단순히 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2억만 리 낯선 나라에서 미국 학교를 다니며 그 안에서 적응하고 어울리기 위해 무단히 애를 썼는데... 이제 좀 융화가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튀고 싶지 않았다.
해외살이에서는 그들과 다른 외국인인 것만으로 늘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하고, 초조하다. 그러니 가능한 문제의 중심에 있고 싶지 않다. 그냥 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고 싶다는 것을 해외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무려 3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나는 풀려(?) 났다.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북한과 남한을 구별하는데 3시간을!!
그러고도 그들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
북한의 공식 영어 명칭이 저따위라서 Republic of Korea가 들어간다. 보고타 입국심사관에겐 그것과 대한민국의 차이를 밝혀 내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가 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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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못할 그 소동이 끝나고, 결론적으로 우리는 방탄차도 탔고, 경비행기도 무사히 탔으며, 아름다운 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상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우리가 겁먹었던 보고타의 총알이나, 무장강도나, 마약 카르텔은 우리의 졸업 여행에 조금도 위협이 아니었고, 내가 '북한 사람'일 거라는 그 사실이 되려 보고타에 위협이었던 것이라니.
각자의 사정은 그렇게 달랐다.
아주 가까이 있지만, 지구 상 그 어디보다 먼 곳.
누군가에겐 그리움이지만, 누군가에겐 고통인 곳.
언론을 통해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곳.
나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리라 상상도 할 수 없던 곳.
그런 북한이 내 인생에 에피소드를 하나 남겨 주었고,
달콤 씁쓸한 선물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모두 추억은 아니다.
하지만 기억에 마음을 주고, 보듬어 주면
현재에게 추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