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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May 05. 2021

학교가 진짜 가르쳐야 할 것


과테말라에 살면서 받은 유일한 혜택은 미국 학교를 다녔다는 것이다. (등교가 제일 어려웠어요 (brunch.co.kr) 참고)


등교하는 길이 매우 험하고, 그 때문에 결석이 잦긴 했어도, 넓은 시야로 봐줄 마음의 여유를 잠시 챙겨 본다면 당시 시절에 미국 고등학교를 다닌 것은 솔직히 혜택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관대하게 바라보면, 우리를 매몰차게 걷어낸 이모, 그 이모의 감정을 쥐고 흔들던 바람난 이모부, 우리에게 조금의 배려도 없던 리사와 제인에게 쌓여 있던 미움의 안개가 한 팔 너비 정도는 걷힌다.  


학교에서 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지만 수업을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고, 대부분 학생들이 선교사 자녀들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착하고 사려 깊은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친구들과 소소한 학교 생활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고, 모범적인 한국인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성적은 늘 탑이니 선생님들에게 예쁨도 받았다.


나의 시어머니는 가끔 나의 과테말라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얘야, 내가 훨씬 옛날 사람이어도 너만큼 고생은 안 했다."


라고 하시는데.


바로 그 역경과 고난의 과테말라 살이, 그 캄캄한 암흑기에도 아주 작은 빛은 그렇게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어색하지만 어여쁘게 빛나고 있었다.


20여 년이 훌쩍 지나서도 그 아픈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그런 작고 어색한 반짝임들이 곳곳에서 깜박깜박 on & off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입학 당시 Junior(한국 고2)였고, 곧 Senior(고 3)가 되었다.


Senior들은 졸업 직전에 졸업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졸업 여행지가 과테말라 내의 어느 지역이 아니라 캐리비안에 자리 잡은 콜롬비아령의 한 섬이었다.(그래... 인정한다. 졸업여행 클라스 와우!)


출처: 구글 이미지


졸업 여행지가 캐리비안 섬이라니!! 그 자체도 환상적이었지만, 그보다 나를 더 문화충격에 빠뜨렸던 것은 그 졸업여행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는 학교의 방법론이었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작은 매점이 있었다. 과테말라식으로 "Tienda(띠엔다)"라고 불렀다.


이 학교의 전통상 그 띠엔다는 Senior학급에서 운영권을 가졌다. 즉, Senior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의 지휘 아래에서 스스로 1년간 '영업'을 해서 '수익'을 창출하고, 그 수익으로 '졸업여행'을 가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진 전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대학에 진학하는 방식이 한국보다 더 자유롭고 다양한 미국 교육 시스템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나, 그렇다 해도 고등학생들에게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살아 있는 경제'를 체험하게 하고, 그 결과에 따른 보상에 대한 자율적인 책임까지 맛보게 하는 것은 어떤 책으로도 가르칠 수 없는 훌륭한 방법론이었다.


약 20여 명의 학급생 전체와 선생님들이 해외 졸업 여행을 가기 위해 벌어야 할 돈은 꽤 컸고, 여행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보면 비용이 추가되는 항목들도 생긴다.


띠엔다 매출 만으로는 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이 되자, 우리들은 스스로 논의하여 추가적인 방법도 찾았다. 바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축구교실' 열어서 자금을 충당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축구를 1도 몰랐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프로 축구 선수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같은 학교 안의 동생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면서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서로가 즐겁게 학교에서 의미 있는 추억을 쌓는 것이 그 모든 활동의 본질이지, 결코 대치동의 '줄넘기 과외'처럼 체육 성적을 위한 스파르타식 '돈 값 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테말라의 미국 학교는 나에게 '학교'라는 곳의 정의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갖게 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등수나 성적이라는 숫자로 환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한국의 교육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이쯤에서 바라건대,


학교라는 곳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목표를 심어 주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놓치지 말며, 즐겁기 위해서는 책임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학교가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숫자로 환산되는 배움의 이상적인 결말은 합격이겠지만,

숫자로 보이지 않는 배움의 끝은 자아의 완성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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