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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Sep 18. 2020

90년대생은 이미 왔고, 90학번들은 아직 있다(1)

X세대와 Z세대 사이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나온 지 약 2년이 지났고, 그들은 정말 왔다.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이제 어디든 그들이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직업은 법조계다.


법을 밥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집단은 일단 고리타분하고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이는 사회에 꽤 알려진 평판이고,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법이란 게 원래 재미가 없는 학문이라서 설사 타고난 유머 세포가 있었더라도 건조한 법서 속에서 극심한 감성 가뭄을 겪고 나면 어느새 무미건조한 인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주변에 유머러스한 변호사님들께 죄송합니다만 당신들이 극소수인 건 맞잖아요...)


또한, 이들은 기수에 따른 서열을 매우, 많이, 격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뉴스에서는 기수가 낮은 판/검사가 상위 직급으로 임명되면, '기수 파! 괴!'라며 무시무시한 말로 보도를 한다. 유교문화가 기저에 깔려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의 서열은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법조계는 좀 유난한 듯하다. 뭘 또 막 파괴라고까지...


이런 법조계에 몸담은 이들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엄근진'


기가 막히게 찰떡이다.

그래, 우리가 바로 'The 엄근진'이다.


앞서 언급한 책의 저자에 따르면, 90년대생의 특징은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솔직)하거나'로 압축되는데, 그런 면에서 법조계는 이들의 특징과는 대척점에 있는 업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는 이미 상당수의 90년대생들이 진입했다. 심지어 그들은 이 딱딱한 업계에서 전혀 딱딱하지 않게 생활하며, 실속 있게 행동하고, 똑똑하게 일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그들을 N포세대니 하며 측은하다는 이미지를 강요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꽤 행복해 보인다. 내려놓을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건지,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바가 달라졌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은 나름대로 꽤 행복해 보인다.


'The 엄근진'들은 여러 종류의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필자는 그중 상.하.좌.우. 엄격한 조직적 구조를 선호하는 한국의 대기업, 그 안의 사내법무팀에서 일하고 있으며 직책은 중간관리자인 팀장이다. 따라서 필자는 팀원들(후배 변호사들)과, 임원들(선배 변호사들)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모시는 임원은 91학번(이하 "변호사 X"), 우리 팀 막내 변호사는 91년생이다(이하 "변호사 Z"). 그리고 필자는 01학번이다.


변호사 Z는 최근 두 달간 우리 팀에서 가장 중요했던 '프로젝트 D'를 단독으로 맡아서 처리했다.


라떼는...!! 신입 변호사가 프로젝트를 맡는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설사, 그 막내가 일을 매우 잘하는 친구라 해도 선배 변호사들의 가르침을 패스하고 단독으로 업무를 리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90년대 생과 90년대 학번이 공존하는 세계는 다르다.


프로젝트 D는 디지털/데이터/서비스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업무였다. "데이터에 대해 아는 만큼 말하시오." 라고 물으면, "저는 무제한 데이터를 쓰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할 것 같은 나와 내 선배들의 영역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삐삐를 차고 신인류가 되었던 변호사 X와 임은경의 TTL 광고에 빠져 애니콜을 썼던 내가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응답하라 1994” 스틸컷>


그래서 나는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인 90년대생, 변호사 Z를 과감하게 투입했던 것이다.  


<출처 https://m.blog.naver.com/ktcu_attic>


내가 변호사 Z를 리드 변호사로 투입하겠다고 맨 처음 변호사 X에게 제안했을 때, 그는 "신입이 리드를 하고 네가 서포트를 할 거라는 거야? 말이 돼? 넌 쪽팔리지도 않니?"라고 했다.


나는 솔직해졌다. "네. 말 돼요. 제가 배우면서 서포트해야 돼요. 저 개인정보보호법 잘 몰라요. 변호사님도 모르시잖아요. 신입은 지금 글로벌하게 핫한 주제인 개인정보라는 개념이 체화된 세대예요. 어쩔 수 없잖아요. 좀 쪽팔려도 우리가 배우면서 하는 수밖에..."


변호사 X는 가자미 눈을 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게 이것은 위에 언급한 기수파괴, 그 무시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략 2010년까지 한국의 변호사들은 계층의 이동, 부의 상징, 사회적 지위의 우위 등의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지식의 양과 깊이에 집착하고, 그것을 무기이자 명예로 삼기에 '모르는 것'에 대한 내적 반발이 심하다. 대학, 학번, 그리고 누가누가 사시를 빨리 붙었나가 서열의 기준이 되는 시간만을 살아왔기에 모든 경쟁에서는 숫자로 정확하게 우열을 가려왔고, 그래서 그 숫자의  배열을 이탈하는 것이 너무 싫은 것이다.


반면에, 90년대생 변호사들은 웬만하면 외국생활 한 번쯤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외국문화에 익숙하고, 설사 외국에 직접 살아보진 않았어도 미드/영드에 익숙하여 한국 밖의 세상일에 박식하며, 학부에서는 법이 아닌 다양한 전공들을 공부했으므로 뼛속까지 '법돌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그들에겐 나이, 학번, 기수 등은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각자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한 가지 기준으로 줄 세우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당연하다.


91년생 변호사 Z는 미국에서 학부를 나왔고, 전공은 커뮤니케이션, 부전공은 경제학. 영어능통자인데 한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한국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그녀는 프로젝트 D를 맡아달라는 나의 제안에 한치도 당황하는 모습 없이 담담하고 쿨하게 “네. 알겠습니다.”라고 응했다. 그리고 두 달간 변호사 Z를 서포트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한 나는 새로운 지식과 법과 해외 사례들을 공부하고 체화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중간관리자가 되면서 게으르고 둔탁해진 머리가 오랜만에 유산소 운동이라도 한 듯 개운해졌다.


프로젝트 D는 당연히 잘 마무리되었다.


90년대 학번 변호사 X는 경영진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낙수효과로 나도 변호사 Z도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90년대생들과 90학번들

그들 사이에서 계속 성장하고 싶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때마다 우리들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성장할지, 그들과 함께 갈 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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