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된 거리에서 다시 걷는 일상

석사 합격과 함께 시작된 최종의 이사

by 삐빕
Zafer Erdoğan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2509248/




석사 과정에 합격한 순간, 거주지를 포함한 여러 불안 요소들이 한꺼번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합격증 덕분에 비자도 연장할 수 있었고, 프랑스에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갱신되었다. 확실한 거주지를 구할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학사 시절에는 이론 중심의 전공을 택했지만, 이번 석사는 보다 실질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과정을 지원했다. 전시 기획을 실제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이 매력적이었다. 지원 과정에서는 단순한 서류 외에도 과제가 있었고 급하게 준비하느라 새 글을 쓸 여유는 없었다. 다행히 학사 과정에서 작성해 둔 글이 많았기 때문에 그중 벤야민의 글을 읽고 쓴 에세이를 제출했다. 운 좋게도 합격할 수 있었다. 발표를 받는 순간부터 나의 일상은 곧바로 현실로 진입했다.

부동산 사이트와 각종 매물 거래 플랫폼을 여러 번 들락날락하며 집 방문 기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9월 입주 가능한 집들은 이미 여름 동안 대부분 거래가 끝난 상황이었다. 나는 합격 발표를 기다리느라 가장 집을 구하기 좋은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학교에 지하철 한 번에 갈 수 있는’ 지역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이 거의 살지 않는 구역이라 매물도 적었다. 결국 '한 번의 환승으로 갈 수 있는’ 위치까지 범위를 넓히게 되었고, 예전에 살았던 13구까지도 다시 고려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파리에서 맨 처음에 집을 구할 때 도움을 받았던 베트남계 부동산 중개인 아저씨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마침 아저씨에게 좋은 매물이 있었고 그 집은 나에게 딱 맞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다른 대기자가 있었지만 아저씨는 예전에 내가 집을 깔끔하게 잘 사용했고 한 번도 월세를 밀리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 주었다. 덕분에 나를 1순위로 배정해 주었고, 대신 주말 이틀 안에 모든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월요일에 바로 집주인에게 서류를 전달해서 대기자보다 먼저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전 15구 집이 개별난방이라 겨울마다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반드시 중앙난방이 되는 집으로 정하자고 다짐했었다. 이번 매물은 중앙난방이었고, 역세권이면서 넓이도 적당했고 내부 설비도 좋았으며 가격까지 합리적이었다. 이런 집을 놓칠 수 없었다. 필요한 서류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부탁하고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했다. 시차를 고려해 서류 준비 타임라인을 촘촘히 짠 덕분에, 주말 이틀 만에 기적처럼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계약에 성공했다. 여러 번의 이사로 이어졌던 고된 여름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었다. 이번에 구한 집은 그간 살아온 곳들 중 가장 퀄리티가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집이 내가 학사 과정을 보냈던 학교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학사 시절에는 너무 지쳐서 학교 근처를 지나는 것조차 꺼려졌고 수업 외에는 일부러 그쪽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석사를 시작하고, 이제는 그저 지나가는 길목이 된 그 학교 건물을 바라보니 오히려 추억처럼 느껴졌다. 문득, ‘여기가 석사 학교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힘들었던 모든 시간들은 새로운 장소와 함께 조금씩 정리되고, 나 역시 그 안에서 한층 더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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