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 선택부터 첫 번째 논문 제출까지의 제자리걸음
석사 과정은 모든 게 새로웠다. 심지어 학교의 분위기와 색깔조차 전혀 달랐다. 이 대학은 놀라울 만큼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진보적이었다. 중도 성향이었던 학사 과정의 대학과 비교하면 정말 많은 차이가 있었다. 캠퍼스는 언제나 개성 강한 학생들로 붐볐고 인종도 다양했다. 그런 학생들을 지원하는 각종 프로그램도 많았다. 학교 곳곳에는 포스터와 대자보가 끊이지 않았고 늘 누군가가 무언가를 규탄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학과에도 다양한 전공을 거쳐 온 친구들이 많았다. 그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수업 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는데, 학사 과정에서는 주로 이론 중심의 강의형 수업이었지만 석사에서는 학생들의 참여가 중요했다. 교실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전시를 보고 현장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이 피곤하긴 했지만, 덕분에 다양한 예술 문화의 장을 경험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
하지만 석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논문이었다. 1학년에도 논문을 제출해야 했기에 나는 서둘러 주제를 정하고 지도교수를 찾아야 했다. 학부를 같은 대학에서 마친 친구들은 교수님들에 대한 정보가 있었지만, 나는 그런 배경지식이 전무했다. 결국 제일 원했던 교수님을 놓친 채, 교수님의 연구 분야만 보고 여러 명에게 메일을 보낸 끝에 가장 먼저 회신을 준 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학사 시절엔 집에 가면 곧장 과제에 매달려야 했다. 발표와 시험 일정이 빼곡해서 밥 먹을 시간조차 아껴가며 책상 앞에 붙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석사는 그에 비하면 훨씬 여유로웠다. 물론 시간을 들여 공부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어느 순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라는 걸 느꼈다. 학사 때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고, 그 여파로 지금은 집중력이 바닥난 것 같았다. 문제는 그 상태가 석사 논문이라는 필수 과제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자료 하나를 보고 급히 정한 논문 주제는 이후 진전이 없었다. 텍스트를 어느 정도 써서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으려면, 그 내용을 첨부해 ‘면담 약속’을 잡아야 했고, 보통 그 약속은 2주 뒤였다. 그 사이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내용을 더 써봐야 정작 면담에서 방향이 아예 뒤집히면 다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일정은 결국 한 학기가 지나고 반년이 흘러도 논문이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한 달 반 만에 한 번씩 만나면 늘 그 전의 내용을 다시 뒤엎는 식이었다. 메일로 피드백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교수님은 꼭 직접 만나서 얘기하길 고집하셨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논문 제출 직전, 교수님은 “이 상태로 제출은 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지도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나는 교수님의 제안대로 1학년을 다시 해야만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 상태에서 2학년으로 진급해 새 지도교수를 구하는 건 더 어려울 것이 뻔했고 나는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석사에서는 다시는 겪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유급을 또 한 번 경험하게 되었다. 두 번째 1학년이 되었고 지도교수님과 논문을 이어갔다. 하지만 제출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교수님은 “논문 주제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런 말을 2년이 다 되어서야 하는지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교수님은 내년에 연구차 학교를 떠날 예정이라 더 이상 지도를 할 수 없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2학년에 올라가서 새로운 교수님을 구하고, 주제를 바꾸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1년을 더 들여 겨우 완성한 논문은 고작 1점 올랐을 뿐이었다. 별로 투자한 보람이 없다고 느꼈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이제는 공식적으로 지도 교수를 바꿀 수 있는 ‘합법적’인 조건이 생겼다는 사실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참 기이한 시간이었다.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계속 붙잡고 있었고, 그렇게 붙잡고 있는 동안 시간만 지나갔다. 끝난 건지 계속되는 건지 모를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