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파리 지하철 이야기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무렵, 현지에 사는 한인 친구들이 해준 조언들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고 기괴했던 이야기. 바로, 파리의 지하철 이야기였다. 아마 파리에서 가장 괴담이 많은 곳이 있다면 나에겐 지하철이다.
파리는 서울 면적의 1/5 크기로 생각보다 좁은 도시이다. 하지만 이 파리 안에는 무려 14개 호선의 지하철이 다니고 있다. 파리 지하철은 '메트로 Metro' 라고 부른다. 역 간의 사이도 짧아 파리의 대부분 동네는 역세권이다. 우리 집도 주변에 다니는 지하철 노선만 네 개 정도였으니까. 촘촘하게 짜인 파리의 지하철 노선표가 처음에는 그렇게 복잡해 보였다. 서울에서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다녔으면서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게다가 괴담까지 있는 곳이라니.
파리 지하철 이야기
다름 아닌 괴담의 주제는 지하철 소매치기다. 파리 소매치기가 자주 등장하는 곳이 랜드마크 주변과 지하철인데 여행객으로 보이는 외국인은 주 타깃이라고. 스리슬쩍 지갑을 훔쳐가는 게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져 사람의 혼을 쏙 빠지게 한다. 지하철에서 일어난 한 에피소드는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한 친구가 핸드폰을 보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정거장에서 멈춰 지하철 문이 닫히고 출발하려는 순간, 잘 나오던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 이 싸함은 뭘까, 손이 허전하다. 찰나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명 손안에 있던 핸드폰이 사라졌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유유히 내 핸드폰을 들고 가는 게 보인다. 너무 놀라 나가보려 하지만, 지하철은 이미 출발했다. 너무나 억울하지만 할 수 있는 건, 핸드폰을 다시 구매하는 것뿐.
이렇게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지하철을 탈 때면 핸드폰은 가방 속에, 가방도 꼭 품 안에 안고 타곤 했다. 한국이었다면 지하철 속 거의 모든 사람이 손 안의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게 다반사인데. 지하철 역이 멈출 때 어느 누가 내 핸드폰을 가지고 뛸 거라는 상상을 할까. 하지만 파리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느 누구도 도와주기가 어렵다. 경찰서에 가더라도 확인증 정도. (그래서 파리 여행을 할 때 여행자 보험을 드는 게 마음 편한 일인 건 확실하다.)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
나도 파리에 있는 3년 동안,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다. 동생과 파리에서 캐리어를 가지고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14~5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옆에 있었다. 자매처럼 보이는 그 친구들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지하철이 도착해 캐리어를 들고 문으로 들어가려 하는 데 아까 그 여자아이 두 명이 문 앞에서 서 딱 막고 서서 어깨를 밀어대는 데 얼마나 황당하던지, 당시에는 동생이 지하철을 타야 하니 그 아이들을 힘으로 뚫고 들어가려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들이 지하철에서 내려버렸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다행히 동생은 탔고 뭔가 싶어 내 가방을 보니, 닫혀있던 가방이 열려있었다... 돈 봉투부터 확인했는데 다행히 안 쪽에 있어 가져 가진 못 했더라. 하지만 심장이 쿵쾅쿵쾅. 같은 칸 안에 있던 파리 사람들도 걱정되는 눈빛으로 날 볼뿐이었다. 아찔했다. 문제는 내가 상상해왔던 '소매치기할 것처럼 생긴 사람'에게 당할 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괴담은 괴담일 뿐, 조심하면 괜찮아
생각해보면 짐이 많아 정신없는 상황, 방심하고 있을 때 일은 벌어진다. 적(소매치기)들이 보기에 만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면 파리 지하철 괴담이 나의 일이 될 일은 거의 없다. 지하철을 탈 때는 늘 조심하며 탔는데 삼 년간 살며 딱 한 번 겪었다. 조심만 한다면 파리 지하철은 꽤나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에펠탑이 지어진 1900년부터 개통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파리 곳곳의 지하철 역은 오래된 옛 느낌이 가득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파리 지하철 호선은 6호선이었다. 서울에서 한강 위를 달릴 때 아름다운 시티뷰가 펼쳐지는 것처럼, 파리도 에펠 뷰가 보이는 구간이 있다. 파리 6호선 pasteur 역을 지나 지상으로 달리는 데 파리지앵들이 사는 아파트들을 지나 센강 위로 달릴 때 보이는 에펠탑 풍경. 와,, 여긴 파리였지! 때마침 그때 거리의 악사들이 지하철 안에서 연주를 해주면 프랑스 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았다. 파리 지하철 괴담이 나의 일이 되지 않게 조심만 한다면, 파리의 낭만은 내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