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는 파리의 피크닉처럼
게으르다는 것.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고 배웠는데, 분명 부지런해야 좋은 것이라 했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해서 보니 파리지앵들 게으름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일상의 축복처럼.
사실 나는 게으른 게 좋다. 하지만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 죄책감이 드는 건 왜 일까.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될까?', '파리까지 와서 이렇게 놀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앞서 나를 괴롭혔다. 파리에 사는 시간 동안 많이 배우고 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지금 내 나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보내고 있어야 할 때니까.
그렇지만 사람마다 인생의 속도는 다 다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다시 재수생이 되었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남보다 늦은 만큼 더 뛰어가야 한다 생각에 제대로 쉰다는 걸 몰랐다. 파리에서 하루하루 값지게 채워야지 생각했는데, 공원에 가보면 하염없이 누워 시간을 보내는 파리지앵들에 조금은 충격적이고도 부러웠다.
계절을 온전히 즐기며 푸르른 잔디밭에 옹기종기 앉아 수다를 떠는 모습. 혼자 매트를 깔고 누워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고, 엎드려서 책을 보는 사람도 있다.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맘껏 본인의 게으름에 충실하고 있는 모습들. 햇살을 사랑하는 파리지앵은 날이 따뜻한 때면 옷을 벗고 태닝을 하며 순식간에 공원을 휴양지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 속에서 조급해 보이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여유로움이 가득해 보였다. 그때 알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조급해하지 말고 나중에는 그리울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작정하고 게을러지기, 쉬는 것도 제대로 쉬기. 이런 시간을 가질 생각에 어찌나 신나던지. 그때부터 나는 파리에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을 도장 깨듯 가 보았다. 뤽상부르 정원을 시작으로 파리 에펠탑 앞 샹드막스 공원, 센 강변, 튈르리 정원, 뤽상부르 정원, 몽수리 공원, 조금 멀지만 뱅센느 숲 등등 잔디밭이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슬가슬한 잔디밭 위에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은 뒤 그냥 누워 버렸다. 집이 아닌 곳에서 눕는 건 생각보다 더 달콤했다. 한참을 누워있다 배가 고프면 바게트를 먹고, 음악도 듣고, 남편과 함께 맘껏 수다를 떨 수 있었던 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피크닉은 일상의 즐거움이 되어 조금 더 정성스레 준비하는 날도 있었다. 파리 살이 3년 차가 될 무렵 디저트도 거뜬히 만드는 수준이 되었는데 예쁜 딸기 타르트를 만드는 날이면 집 앞 공원에 가서 점심을 먹고 왔다. 별 거 아니지만 파티라도 한 듯 기분이 상큼해졌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따사로운 햇살과 따스한 공기를 귀하고 소중하게 즐길 수 있는 법을 알게 된 피크닉.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 부부는 각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다. 일정이 바쁠 때면 체력이 방전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문득문득 파리에서 맘껏 게으를 수 있었던 그 시간, 그 여유로움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