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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Jul 20. 2021

이명희  이야기 (2)

대동면 무지개가 낫낫허니 징허게 좋구마이

바로 어제 7월 19일 저녁 7시 27분에 온 카톡. 내 동생 함평 대동면 이명희 이장님이 비 온 끝에 걸린 무지개를 와락 잡아서 전송했다.

            - 사진; 이명희


함평천지에 뜬 무지개라 그런가? 낫낫허니 징허게 좋다. 전라도에서는 연하고 부드러운 걸 말할 때 낫낫하다고 한다. 동네에 새댁이 시집오면 곱고 예쁘다는 뜻으로 “데차나(과연) 그 집 물색임 마. 낫낫허니 징허게 좋구마이”라고 칭찬한다. 명희가 보낸 함평 무지개가 바로 그러했다. 풀을 매고 돌아서면 풀이 쫓아 온다는 요즘, 하늘과 땅 사이에 다리를 놓은 무지개를 발견한 명희 여유가 반갑다. 그런데 또 카톡이 울린다. 명희다.   


             - 사진; 명희 큰 며느리 연정이

                            - 사진; 명희 큰 아들


서울 사는 아들 며느리가 보내준 무지개를 내게도 나눠주며 좋은 일이 생길 거라 위로한다.   휴대전화 사진은 역시 젊은 사람 솜씨가 좋다. 명희의 딸 같은 며느리 연정이가 보내준 무지개는 살갑고,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 아들이 보낸 무지개는 당차다. 속담에 “아들도 말 태워 놓으면 사촌 된다”는 말이 있다. 혼인시키면 남이 된다는 뜻인데 명희는 딸이 둘이나 생겼다. 아들이 셋인데 딸이 둘이다. 서른여덟에 낳은 막둥이 장가면 딸이 셋! 해병대 출신 막동이 색시가 기대된다. 엄마 닮아 미남인 명품 총각 막내아들은 올해 꽃다운 27세. 이 조카를 찜한 처녀는 대동면 보물로 등극할 것이라고 본다.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그 집이 흥한다는 옛말을 명희가 증명하고 있다.  새로 집도 짓고 논밭도 사고 자식 농사도 잘 짓고!!!  

 

- 사진 ; 새로 지은 명희네 집 7/19일 저녁나절 풍경


명희가 보내는 톡은 명희의 영농일지고 대동면 이장 생활 보고서다.      

2021.7.17.

ㅎㅎㅎ

헉헉헉

아침부터

덥디덥내

엇그제까지

하우스24동

열처리소독

하느라 울신랑

넉넉잡고 20일은

완전몰입몰임

로터리치고 또치고

퇴비내고 또 로터리

ㅠㅠㅠ땀 범벅ㅠㅠ

내가도와줄수있는건 불과몆가지

남자들은 정말정말

가장이란이름으로

하루도안쉬고

몰입해야 일마무리

끝이보임 ㅠㅠㅠ

농촌이나 도시나

집에서놀고있음

뭐든지나눔을

할수없으니 열심히

노력하고가꿔서

판로하고나눔하고 먹고 그냥웃음시롱

남은여생살아가려고 우리부부노력

중이내 ㅎㅎㅎ

경제적으론 넉넉

하지않지만 우린

마은이넉넉한부자인만큼 미소잃지

않고 한발한발

걸아가내

오늘은함평5일시장

마을에사시는

어르신께서 팔순

이시라고 동내어르신들

뭐사서드리라고

자식들이 돈을줘서

24일토욜날

모시송편이랑

치킨이랑 과일

싱싱생오징어사서

무침하려고시장나옴  

심부름은이장이 햐야된게

움식할뗀  부녀회장님이랑

맘과손이 딱맞은게

맛있게해서먹을라내  어후더워 ㅠㅠ

땀 뻘뻘 ㅎㅎㅎ     


요약하면 7/17(토) 제부가 몰입해서 20일 동안 딸기 하우스 24동 열처리 소독하고 퇴비내고 로타리 쳤다. 시골 남자들 일은 끝이 안보여 힘들다. 자기가 도울 수 없어 안타까운데 이장으로써 또 할 일이 많다. 24일은 동네 어르신 팔순이라 부녀회장이랑 같이 마을 회관에서 조졸한 잔치를 다는 내용이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어르신들 모시는 것도 여의치 않아 방역을 하면서 시차를 두고 모실거다. 함평 천지 신(新) 농가월령가라도 써야할 판이다. 명희 덕분에 조선 후기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펼쳐 본다. 정학유는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둘째 아들이다. 농부의 삶을 꼼꼼하고 정확히 들여다본 덕분일까? 그 당시 농촌 24절기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음력 유월령은 이렇다.


초록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 위에 물 고이니 참개구리 소리 난다  

봄보리 밀 귀리를 차례로 베어 내고  

늦은 콩 팥 조 기장을 베기 전에 심어 놓아  

땅 힘을 쉬지 말고 알뜰히 이용하소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 뿐이로다  

논밭을 번갈아 삼사차 돌려 맬 때  

그 가운데 목화밭은 더욱 힘을 써야 하니  

틈틈이 나물 밭도 김매 주고 잘 가꾸소  

집터 울 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히고 맥 빠진 듯

 

음력 6월이니 딱 지금 이야기, 옮겨 적고 보니 명희 영농일지와 비슷하다. 삼복더위에 파리모기 극성인데 논밭으로 뛰어다니며 허리 한번 펼 참이 없는 농부의 하루. 내 동생도 다르지 않다.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옛 농사꾼처럼 풀과의 전쟁이다. 이렇게 애써 지은 농산물을 더러는 팔아서 생활비로 쓰고,더러는 따로 챙겨 고마운 사람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동네 어르신들 밥상에 올린다.


동생의 삶을 들여다보면 내가 존경하는 착한 농부가 보이는데. 오늘은 2002년 MBC 느낌표!를 통해 좋은 책으로 선정된 전우익 농부가 쓴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한 대목이 손에 잡힌다.      


“곡식이 자라는 데는 나름대로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걸 무시하고 욕심을 부리면 키만 크고 약하게 자라서 열매가 달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쉬 쓰러져 버립니다. 그래서 솎아 내고 순도 자릅니다. 계속 자라게 하려면 이제까지 박고 있던 뿌리의 일부를 잘라내야 합니다.”


- 이목구비가 뚜렷한 매력 뿜뿜 명희

 

브런치에 명희 이야기를 쓰는 이 시간, 명희는 흙을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진실한 사람. 배우고 또 배우면서 농사 짓는 명희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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