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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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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Aug 02. 2021

풍등(風燈) (4)

나도 그날 거기에 있었다

유난히 뜨거웠던 1987년 6월,  6·10 국민 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학교 앞에서 호헌철폐 독재 타도 함성이 하늘을 뚫었다. 이날 경찰이 쏜 최루탄이 이한열 열사의 후두부를 가격했고, 이 사진이 역사에 각인된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이한열 열사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6월 10일 열린 국민 대회는 들불로 번져갔다. 이 사진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 각지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호헌철폐를 요구, 6월 민주 항쟁은 정점으로 치닫고 결국 6월 29일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가 직선제를 수용 선언 민주화의 길이 트인다. 하지만 이한열 열사는 한달여 동안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하늘의 별이 된다. 그의 나이 겨우 20세.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장례식이 열린 신촌 거리. 나도 거기에 있었다.     

      <사진 출처; KBS 뉴스- 촬영 : 주리시 교수, 화면제공 : 이한열 기념사업회>


1987년 7월 9일 오전 남현동 예술인 마을에서 미당 서정주 선생을 뵙기로 했다. 인물 다큐멘터리 <시인의 마을> 취재를 위해 계산동에서 1500번 버스를 타고 와 신촌에서 남현동 가는 버스를 갈아타려고 했다. 그런데 신촌에서 이한열 열사 장례 행렬에 휩싸였다. 거침없는 노도(怒濤)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 미당 선생님께 전화도 하지 않고 거친 파도에 합류, 향년 20세 젊은 피를 따라 시청까지 걸어갔다. 눈물과 통곡으로 가는 길을 배웅하자 그의 피가 모두의 핏줄에 스며들었다. 그날 눈을 뜰 수 없게 만든 최루탄 안개는 걷힌 것일까?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보고 부마항쟁 현장이라고 한 덜 똑똑한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풍등(風燈)을 걸어야 할 것 같다.  강제로 하늘의 별이 된 이한열 열사를 위해서.  



안갯속에서        - 박길숙-


당신 알아요?

막다른 길에서 멀미 앓는 풀잎  

자꾸만 겁탈하는 이 먼지바람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지금 세상은 정답이 없어요.

곧은길은 절벽에서 끝이 나고

굽은 길은 진구렁 속으로

한없이 뻗어갑니다.


오늘 나

한 발은 곧은길에

또 한 발은 굽은 길에 놓고 서성거려요  

헛기침. 헛디딤. 헛.. 헛말이 자꾸 혀에 감겨요.

굽은 길로는 눈물도 흐르지 못해 썩을 거 같아요  


당신은

곧은 길만을 낼 수 있지 않은가요?

우리 모두 아우성치며 좋아라

먼지 탈탈 털어내고 뒹굴어 볼 수 있는 탄탄대로   

 

제발 이 안개 걷어가요

우리 눈물 은하수로 흘러 당신 몸에 닿는 꿈

눈물에 흠뻑 젖어 새 몸으로 오는 당신을 맞는 꿈   

당신 살 냄새 맡고 돋은 여린 풀잎 지치지 않도록,     

우리 동네 폐쇄된 세차장에 돋아난 강아지풀은 녹슨 쇳덩어리를 깔고서도 의연하다.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

      <사진 출처; KBS 뉴스 - 촬영 : 주리시 교수, 화면제공 : 이한열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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