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지키는 생계가 가장 위대하므로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을 부르지요" <바람의 화원 - 이정명 著>에 나오는 신윤복 대사다. 폭풍이 거세게 휩쓸고 가서 그리움이라는 것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이 땅에 바람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남녘에서 시작된 바람의 붓놀림. 이 얼마나 벅찬 그리움인가?
지리산 절친이 보내준 바람의 화원. 그리움은 산수유로 피었고 내 마음은 밤새 달려가 꽃물에 발을 담근다. 꽃들은 어쩌자고 우격다짐으로 저리 곱게 피는가? 꽃들에 물어보니 일상을 지키는 생계가 가장 위대해서라고 답한다. 꽃이 피어야 사람도 먹고살고 벌 나비도 먹고 산다. 혹여라도 꽃이 피지 않는다면 봄은 얼마나 궁핍하고 옹색할까?
집집마다 꽃가마 한 채씩을 어깨에 올렸다. 그리움 가득 채워 허위허위 세월을 넘을 터, 바람이 그려놓은 저 고운 풍광이 내게 말한다. "병풍도 구부러져야 선다네. 인생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삼만 육천오백일. 부드럽게 구부러져 날마다 날마다 바로 서시게"
바람의 화원에 난 물길 따라 함께 흐르는 나그네 둘. 어떤 사연으로 만나 어떤 사연을 이룰까? 부디 몌별(袂別)이 아니길. 차마 스쳐갈 수 없는 운명적 사랑. 소매 자락 부여잡고 심장 도려내는 아픔이 없기를, 나도 그러하므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 봄. 이 새벽. 내 병풍을 조금 구부려보니 꼿꼿이 선다. 일상을 지키는 생계가 가장 위대하다고 일러준 봄꽃이여. 참 고맙다.
그리고 카톡으로 바람의 화원을 통째로 보내준 나의 벗이여.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