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길숙 Mar 17. 2022

봄꽃이 피는 이유

일상을 지키는 생계가 가장 위대하므로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을 부르지요" <바람의 화원 - 이정명 著>에 나오는 신윤복 대사다. 폭풍이 거세게 휩쓸고 가서 그리움이라는 것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이 땅에 바람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남녘에서 시작된 바람의 붓놀림. 이 얼마나 벅찬 그리움인가?

지리산 절친이 보내준 바람의 화원. 그리움은 산수유로 피었고 내 마음은 밤새 달려가 꽃물에 발을 담근다. 꽃들은 어쩌자고 우격다짐으로 저리 곱게 피는가? 꽃들에 물어보니 일상을 지키는 생계가 가장 위대해서라고 답한다. 꽃이 피어야 사람도 먹고살고 벌 나비도 먹고 산다. 혹여라도 꽃이 피지 않는다면 봄은 얼마나 궁핍하고 옹색할까?

집집마다 꽃가마 한 채씩을 어깨에 올렸다. 그리움 가득 채워 허위허위 세월을 넘을 터, 바람이 그려놓은 저 고운 풍광이 내게 말한다. "병풍도 구부러져야 선다네. 인생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삼만 육천오백일. 부드럽게 구부러져 날마다 날마다 바로 서시게" 

바람의 화원에 난 물길 따라 함께 흐르는 나그네 둘. 어떤 사연으로 만나 어떤 사연을 이룰까? 부디 몌별(袂別)이 아니길. 차마 스쳐갈 수 없는 운명적 사랑. 소매 자락 부여잡고 심장 도려내는 아픔이 없기를, 나도 그러하므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 봄. 이 새벽. 내 병풍을 조금 구부려보니 꼿꼿이 선다. 일상을 지키는 생계가 가장 위대하다고 일러준 봄꽃이여. 참 고맙다.

그리고 카톡으로 바람의 화원을 통째로 보내준 나의 벗이여. 참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을 잃을까 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