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내내 시골에서만 살면서 혼자 도시에 나갈 일이 없었다. 불량배를 만나서 돈을 뺏기거나 맞을 일도 없었다.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 거친 형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맨날 보는 사람들이고 부모님들끼리도 아니, 약간의 놀림이나 장난 이상으로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는 버스를 타고 통학을 시작했다.
1학년 어느 날, 아빠가 디스크드라이브를 10개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시면서 만원을 주셨다. 3.5인치 디스크 한 통에 약 7천 원. 버스를 타고 멀리 떨어진 전자마트로 가야 했다.
낯선 동네에 내리고 보니 저 멀리 전자마트가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보다 키가 좀 더 작은, 그러나 몸이 다부진 어떤 남자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이쪽으로 잠깐 따라오라’고 했다. 내 나이를 물어보더니 자기는 중2라고 했다.
“얼마 있어?”
“네?”
“얼마 있냐고”
“저 만원 밖에 없는데, 이거 아빠 심부름 값이에요“
“보여줘봐”
나는 아빠 심부름해야 하니 못준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뺏었다.
계속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자신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아냐고 협박한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 애들도 자기를 다 안다고 말했다. 뭔가 무서우면서도 자꾸 허풍인 것 같았다.
근데 이걸 어쩌나. 이미 돈은 빼앗겼다. 하지만 딱히 나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슬슬 그 사람보다 빈 손으로 돌아가서 만날 아빠가 더 무서워졌다. 이대로 집에는 갈 수 없어서 계속 돈을 달라고 했다. 약 1시간을 실랑이 했다. 돈 줘. 안돼, 너 나한테 맞을래? 나 싸움 엄청 잘해. 알겠어, 돈 줘. 이런 식이 었다.
그 사람이 갑자기 돈을 꺼내더니 손으로 꼭 쥐며 말한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봐.”
내가 가져가려고 하면 손을 뒤로 뺀다. 억지로 뺏으려고 해도 세게 쥐고 있어서 쉽지 않다. 좀 우는 소리를 하고 딴청을 피우다가 이때가 아니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엄청 빠른 속도로 그 돈을 다시 뺏었다. 그러고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쳤다.
200미터 정도 떨어진 전자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도 가게로 따라 들어왔다. 어른들이 많아서 그런지 선뜻 나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빠른 걸음으로 마트 안에서 도망 다녔다. 그 사람이 다가오면 나는 끊임없이 다른 코너로 이동했다.
30분쯤 지났을까, 결국 그 사람이 포기한 듯 밖으로 나갔다. 난 안심할 수 없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디스크를 계산하고 조심스럽게 나왔다. 주위를 살피다가 버스가 오는 걸 멀리서 보고 전속력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뛰었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탔다. 다행히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집으로 태연히 가서 아빠에게 디스크와 잔돈을 드렸다. 일어난 일을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뭔가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리고 평소에도 내 속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드리지 않았기에, 그냥 속에만 담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 그 불량배의 손이 기억난다. 돈을 꽉 잡고 있던 그 손. 그리고 다시는 없을 0.1초의 기회. 그걸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골에서 느긋하게만 큰 내가 처음 맛보는 긴박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