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한글인데 한국어가 없다.
처음으로 둘째 아이와 함께 키즈카페에 들어갔다. 둘째 아이가 엄마와 함께 키즈 카페에서 놀고 싶다고 특별한(?) 부탁을 했다. 평일 저녁 시간인데도 아이들이 꽤 많았다. 아이가 기념일 때마다 오던 키즈카페인데 나와 함께 입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가 이곳에서 어떻게 노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안전하고 위생적 인지도 궁금했다.
꽤 넓은 공간에서 쾌적하게 다양한 놀이기구가 운영되고 있었다. 마감 한 시간 전에 입장해서인지 아이는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놀았다. 머지않아, 마감 30분 전. 놀이기구들이 하나하나 마감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익스트림 플로어 마감하겠습니다'
'메가 슬라이드가 30분 뒤에 운행을 마감합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의 이름과 위치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나는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메가슬라이드로, 익스트림 플로어로 뛰었다.
달려가다 보니 바닥에 쓰인 위치 안내도를 보게 되었는데... 한글인데 한국어가 아니다. 익스트림 플로어, 트램펄린, 메가슬라이드, 그리고 영어.... 마켓 놀이. 키즈카페 여기저기 붙어있는 놀이기구 정보를 보니 한글의 의미가 적힌 기구가 단 하나도 없었다. 영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국어로 적은 내용이 90% 이상이었다.
마켓 놀이는 시장놀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걸까? 아이들은 방방이와 트램펄린이 같은 놀이기구라는 걸 알고 있을까?
놀이 시설과 카페의 기능을 함께 갖춘 곳. 어린이가 즐겁게 노는 동안에 부모는 편하게 차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복합 놀이공간 중 하나로 키즈 카페는 아이들과 부모를 모두 만족시키는 시설이다. 실내 복합 놀이터라는 단어가 키즈카페가 가진 최신의, 세련된 그런 느낌을 모두 담을 수 없었을 거라고 본다.
주변 중국과 북한과 달리 우리나라는 외래어에 매우 개방적이다. 한글이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큰 언어적 장점이 있는 만큼, 외래어에 대한 반감도 적고, 활용도도 매우 높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중학생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내가 아이큐 테스트 해 볼까? 오렌지 주스가 영어로 뭐게?"
대답을 멈칫한 상대 아이는 "어뤤지 쥬우스~" 라고 말하며 낄낄 웃는다.
한국어보다 고급스러움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어소리를 그대로 한글로 적는 것일까. 예를 들어, 타이어 급류타기는 메가 슬라이드보다 방방이는 트럼폴린보다 회전 미끄럼틀은 트위스트보다 저급한 것일까.
사실상 영어 남용이냐 아니냐의 명확한 구분은 어렵다. 이미 다양한 언어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의 단어가 일상생활에 쓰이는 표준 외래어로 자리잡았다. 다행히 어렷을 적 할머니가 많이 쓰시던 일본어 단어들은 일상에서 많이 사라졌다.
가당(계단), 쓰메끼리(손톱깍이) 라는 단어는 친할머니께서 많이 쓰시던 단어인데 (지금도 기억함으로) 지금 우리 엄마 세대에서는 이제 듣기 어려운 단어이다.
이제 최근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을 떠올려본다.
커피, 빵, 아이스크림, 베이킹파우더, 컴퓨터, 마우스, 핸드폰, 펜, 휄체어, 카라멜, 화이트보드, 숄더백, 폴더, 메일, 홈페이지, 테이블, 클립, 네일아트, 렌즈, 데이터, 포맷, 이벤트, 티슈 등등
내 일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외국어들이 한국어로 둔갑하여 한국어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