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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메이커 Sep 09. 2022

집 나갔던 달팽이가 돌아왔다

생명의 기운이 솟았던 신비스러운 여름날의 이야기 

이사를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새집에는 베란다가 없는 대신 작은 야외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의 반은 1평 반 남짓한 텃밭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식물을 키우는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어 토마토와 고추, 스위트 바질 허브 모종을 심었다. 나머지 공간에는 캠핑의자 두 개와 파라솔을 설치하여 좁은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6월 달부터 토마토와 고추가 대롱대롱 열리면서 소소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7월 말쯤 어느 날, 텃밭 한가운데로 달팽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달팽이 치고는 상당히 컸다. 약 14cm 남짓한 길이의 외래종 달팽이였다. 자연에서 사는 달팽이는 아닌 것 같았고 누군가가 키우는 도중에 버렸거나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이들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죽을 거라며 우리가 키워야 한다고 떼를 썼다. 


나는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다. 


달팽이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무엇보다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부담을 주었고, 애완동물의 죽음이 가져다 줄 상처가 싫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이미 달팽이 집이 될만한 박스와 냉장고 안에 있던 쌈채소와 분무기를 준비했다. 달팽이 이름도 지어주었다. 붕붕이 


붕붕이와의 동거 


온 가족이 붕붕이를 공부했다. 붕붕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신선한 상추와 달걀 껍데기이며 미지근한 온수로 샤워를 해주면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달팽이 샤워를 시켜주면  온몸으로 물을 맞으며 좋아하는 달팽이의 모습은 나조차 웃음 짓게 했다. 그리고 달팽이가 굉장히 예쁜 똥을 싼다는 것도 알았다. (달팽이 똥은 연필심 모양 같다) 


아이들과 남편은 번갈아가며 매일 분무기로 수분 보충, 달팽이 밥 주기, 똥 치워주기, 샤워시켜주기, 흙 갈아주기를 했다. 


나는 한 번도 붕붕이를 만진 적은 없지만 외출 시에 혹시나 붕붕이 집이 햇빛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서 집 위치를 바꿔주고, 달걀 요리를 하고 난 뒤에는 껍데기를 버리지 않고 먹이로 주는 일을 했다. 아이들과 남편이 저녁마다 붕붕이와 이야기하며 노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 엄마가 알아보니까 붕붕이는 내년 봄에 죽을 가능성이 크대. 알겠지? " 


나는 벌써부터 아이들이 붕붕이가 죽고 난 뒤 슬퍼할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성급하게 아이들에게 붕붕이와의 헤어짐을 미리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붕붕이의 탈출 


오전에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둘째 아이가 붕붕이가 좋아하는 날씨라며 텃밭에 잠깐 붕붕이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집에 다시 넣는 것을 잊고 외출을 해버렸다. 이미 3시간이 넘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자취를 감췄다. 3시간 동안 도대체 얼마나 이동을 한 걸까? 어디로 간 걸까? 무엇인가에 밟히진 않았을까? 


둘째 아이는 자기가 잘해주지 못해서 집을 나간 거라며 자책을 했다. 남편도 말은 안 했지만 집 근처 이곳저곳을 다니며 붕붕이를 찾았다. 4일쯤 지나자 남편이 붕붕이의 집을 정리하려 했고 둘째 아이는 '안돼!! 붕붕이는 꼭 돌아올 거야. 붕붕이 집 버리지마!' 라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가족은 상추랑 달걀 껍데기만 봐도 붕붕이 생각이 났다. 



텃밭에 일어난 신기한 일들 


그렇게 붕붕이가 조금씩 잊혀 갈 때 쯔음, 우리 집 텃밭에서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텃밭 바로 앞에 주먹만 한 참새가 죽어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참새는 어떻게 죽은 것일까? 왜 하필 우리 집 바로 앞 길에 죽은 것일까?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 아이가 생명의 죽음을 보는 것이었는데 아이는 그렇게 생명의 죽음을 봐 버렸다. 그래서 우리 텃밭에 땅을 파고 참새를 묻어주었고, 표식을 했다. 나와 아이는 기도를 했다. 


 어느 날은 자정이 넘은 새벽에 검은 고양이가 우리 텃밭에 들어와 자기 집인 마냥 의젓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새벽까지 깨어있던 날에는 고양이가 우리 텃밭에 들어와 머무는 것을 보았다. 남편은 고양이 먹이를 급히 찾아 주기도 했다. 가끔 집 주변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고양이었다. 우연이겠지만 우리 집에 동물들이 모여드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고양이 


태풍 예보 전날, 붕붕이가 돌아왔다


아직도 붕붕이가 어떻게 다시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던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우리 집 앞에 떡하니 나타나 '짠! 나 돌아왔어'라는 것처럼 나타났다. 황당하고 신기했다. 



붕붕이를 다시 발견한 것도 둘째 아이 었다. 이것 또한 우연이겠지만 죽은 참새를 발견한 그 자리에 붕붕이가 있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동네가 떠나갈 것 같았다. 남편도 무척 기뻐할 것 같아 영상을 찍어 보냈다. 



우리는 붕붕이와 함께 다시 살고 있다. 붕붕이가 좋아하는 비싼 상추를 구입하고, 비가 오는 흐린 날이면 붕붕이를 텃밭에 풀어놓고 함께 논다. 가을바람에 건조해지는 날인 요즘에는 샤워와 수분 보충을 자주 해주는 편이다. 




첫 수확, 첫 애완동물 그리고 참새의 죽음까지  


아이들은 이제 내년 봄에 붕붕이의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잘 알고,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또 붕붕이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상관없이 한 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다양한 감정 경험을 가져다 준다. 올여름에 우리 가족이 경험한 첫 수확의 기쁨과 첫 애완동물인 달팽이 그리고 참새의 죽음과 오늘 새벽에도 우리 텃밭에 와 있을지 모르는 고양이까지. 






붕붕이와 내년 봄에 헤어질 때쯤 가장 슬퍼하는 사람은 왠지 나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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