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내 어린 시절의 도벽의 이유를 찾다.
1. 꼬마곰젤리
내 기억엔 초등학교 1,2학년 때부터 무엇인가를 훔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의 옷 주머니에서 돈을 훔친 것은 다반사였고 슈퍼마켓에서 꼬마곰 젤리도 2번이나 훔쳤다. 그중 한 번은 들켜서 슈퍼 아저씨에게 혼쭐이 났다. 나는 그날 내가 느꼈던 수치심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난 꼬마곰젤리는 잊을 수 없다.
또한 집안의 모든 저금통은 당연히 내 용돈주머니였고, 열 수 없는 철로 된 저금통도 어떻게든 이리저리 돌려 돈을 뺐다. 결국 엄마도 이 모든 걸 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엄마에게 크게 혼난 기억은 없다. 기억은 딱 하나인데, 엄마가 나에게 했던 이 말이 기억난다. ' 네가 훔친 돈을 모두 합하면 웬만한 운동기구 살 값은 될 거야.'라고 했다.
2. 친구의 지갑
나는 점점 대담해졌다. 학교에서도 2번이나 친구의 돈에 손을 댄 적이 있다. 한 번은 한 친구의 지갑에 있는 돈을 다 빼서 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그 지갑은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다. 친구가 불쌍할 정도로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나는 지갑을 찾겠주겠다며 갑자기 목격자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 아이는 (9살 아이였던 나)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걸까? '어떤 오빠가 들어와서 책상 위에 있는 네 지갑을 가져갔다'고 진술(?)했고,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용의자를 찾아 나섰다. 지갑을 잃어버린 친구와 나는 서로 손을 잡고 선생님과 함께 학교의 모든 교실을 돌면서 용의자를 찾기 시작. 당연히 찾지 못했고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그날 나는 모두가 집에 가고 난 뒤 화장실 쓰레기통을 뒤져 그 친구의 지갑을 찾았다. 그리고 친구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집으로 갔다. 그 뒤에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3. 바나나
저금통 속 동전들이 없어지는 걸 안 뒤로 집안에서 무엇인가가 없어지면 엄마는 나를 의심했다. 한번은 엄마가 아주 큰 바나나를 냉장고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중 바나나 2개가 없어진 것. 어떤 사연이 있는 바나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는 누가 먹었냐고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먹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엄마는 나에게 왜 거짓말을 하냐고 했고 결국 엉덩짝을 후두려 맞고 엉엉 울었다. 그때의 나는 굉장히 억울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바나나를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4. 곗돈 스틸
나의 가장 큰 도둑질은 친구들과의 모임 곗돈을 날름 '인 마이포켓' 한 일이다. 정말 겁도 없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친구들끼리 토요일마다 놀러 가기 위해서 매주 1000원씩 모으는 모임이 있었다. 나름 체계적인 모임이었다. 10명의 친구들이 모여 직급을 정했다. 문방구를 하던 친구가 카드를 만들고 코팅까지 해서 모임을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그 모임의 총무는 나였다. 나는 주말이면 친구들에게 수금을 했고 모임 회비를 동전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 돈이 얼마였을까. 한번에 다 쓴 것은 아니었고 그때 그때 돈이 필요할 때 사용했던 것 같다. 친구들에 대한 조금의 미안함도 갖지 않았다. 어느날 친구들에게 그 돈을 다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등하교를 같이 했던 친구는 나의 거짓말을 믿어주었는데 정말 미안했다. 그 친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학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내 동전지갑을 찾으러 다녔었다.
그 뒤로 서서히 나는 도벽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때의 감정과 기억은 조각조각 살아있었다. 그 때의 감정까지 없어지지 않고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왜 일까? 그리고 기억이 가끔 떠오르면 가슴 한편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9살에 나는 도대체 왜 도둑질을 했을까?
오은영 신경정신과 전문가의 <초등생 아이의 도벽에 관한 강의>가 있었다. 일단, 5세 이후의 도벽은 아이가 정신적으로 외로운 상태라는 신호라고. 특히 부모가 너무 바쁘거나 맞벌이인 경우, 아이에게 대화를 해주지 않고 혼자를 내버려 둘 때 도벽을 시작하게 된다고. 아이는 도벽 때문에 혼이 나거나 매를 맞는 것을 관심이라 생각하게 된다고. 또한 도벽으로 얻은 돈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서 외로움을 달래고 그 돈을 통해 친구 관계를 맺게 된다고. 한 마디로 정리하면 도벽이 있는 아이는 '처절하게 외로운 상태'인 것이라고.
9살의 나는 많이 외로웠던 걸까? 나는 밤 9시에 일터로 나가는 엄마, 아빠를 배웅했고 4살짜리 동생과 함께 잠에 들어야 했다. 낮에 잠을 자야하는 엄마와는 대화가 부족했다. 토요일만이 유일하게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었다. 모르는 단어를 물어봐도 매번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던 아빠와 낮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어린 나는 정말 처절하게 외로웠을 수도 있겠다. 엄마도 먹고살기에 바빠 힘들었다는 걸 안다. 그때 당시에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다. 이제 조금은 엄마를 이해할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몇 년 동안은 아무도 그 9살 아이가 처절하게 외롭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걸 몰라주었던 건 조금 억울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9살 아이의 수치심도 외로움도 내려놓을 수는 없을까.
괜찮아. 9살의 너야. 그때의 도벽의 기억은 이제 잊자. 그리고 조금 부족하게 살더라도 내 아이들에게는 처절한 외로움을 물려주지는 말자. 그 상처가 기억 끝에 남아 있었다는 걸.. 이제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