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선생님께 촌지를 주었던 날

엄마는 잡지 한권을 들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by 트래블메이커

맞벌이를 하는 우리 집은 나와 동생에 교육비 지출이 컸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자, 수입의 대부분을 교육비로 쓰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먹고 입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은 악착같이 아꼈지만 교육비는 아끼지 않았다.


엄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나를 사립학교에 입학시켰다.


지금은 이른 나이라는 기준이 없어졌지만 2월생인 나는 연도상으로 일년 빠른 아이들과 학교를 다녔다. 당시 사립초등학교는 추첨을 해서 입학할 수 있었는데 네모난 상자 안에서 공을 꺼내어 등락을 결정했다. X가 쓰여있는 공을 꺼낸 엄마들의 표정은 세상을 잃은 표정이었고, 몇몇 엄마들은 울기까지 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했나 싶었다. 아무튼 엄마는 운이 좋게 O이 적힌 공을 뽑아 나를 입학시킬 수 있었고, 입학 당첨이 된 그날. 엄마의 기뻐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토요일 새벽에 나를 깨워 그 주에 배운 교과서부분을 지우고 다시 풀게 했다.


새벽 장사를 하는 엄마의 직업 특성상, 엄마는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매주 토요일 아침 6시에 나를 깨웠다. 아니 새벽 6시. 동이 트지 않았던 아침이었으니까. 나는 매주 그 시간에 주황색 불빛이 내리꽂는 부엌 테이블에 앉았다. 내 앞에 앉아 엄마는 불경을 읽었다. 엄마는 나에게 교과서를 모두 가져오라고 한 뒤에 그 주에 배운 부분을 지우개로 다 지워서 다시 풀게 시켰다. 수학익힘책을 지우개로 박박 지워서 다시 풀 때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이때부터 커진 듯 싶다. 솔직히 돈도둑인 사립초등학교가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 엄마, 선생님이 내가 손을 들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요"


'빠른 생일이었던' 나는 다행히 학교수업을 곧잘 따라갔고 활발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어느 날부턴가 학교 생활을 지루해하고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종종 엄마에게 " 수업시간에 손을 들어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발표도 시켜주지 않아요" 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잡지 한 권을 들고 처음으로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엄마는 큰 결심을 한듯이 손에 딱 쥐어지는 사이즈의 작은 잡지를 한 권 사서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잡지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어...) 나는 엄마와 선생님의 면담 후, 학교 생활에 적극적이 되었고 발표도 많이 하는 어린이가 되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 잡지 사이에 (이 잡지는 종이봉투와 세로 길이똑같다고....다른 아이엄마에게서 촌지주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돈 봉투를 끼워 선생님께 건넸다고 한다. 그리고 나니 신기하게도 내가 학교에서 발표한 이야기, 선생님한테 칭찬받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신나게 늘어놓았다고 하니 확실히 촌지의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90년도에는 엄마들이 주는 촌지의 형태는 다양했다. 어떤 엄마는 학교 전체에 선풍기를 새 것으로 교체해주기도 했고, 또 옆반 반장 엄마는 학교의 모든 선생님을 모시고 강남 유명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엄마들은 서로 다투어 이런 방식으로 '내 자식 좀 봐주세요!!!!'를 외쳤다.


"엄마 그때 선생님한테 얼마줬어?"

"한 십만원 줬나..얼마 안 줬어."

"십만원? 줄꺼면 아예 많이 주지ㅋㅋ십만원이 뭐야"

"그때는 그것도 큰 돈이었고, 처음엔 나는 촌지 줄 생각도 안했어. 어떻게 줘야할지 얼마를 줘야할지 고민도 됐고..누구누구 엄마한테도 물어보고 그랬어"


사람의 마음이란게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각별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일텐데... 누군가에게 돈도 받고 식사도 대접받았다면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눈길이 가지 않았을까.


놀라운 사실은 우리 엄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6년 동안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학교에 온 게 그날 딱 한번이었다는 것이다. 잡지 속에 촌지를 숨겨서 왔던 바로 그날.




내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며 맞은 첫번째 스승의날. 꼼꼼히 쓴 편지와 만원 짜리 스프레이 화장품과 여름에 요긴하게 쓰실만한 기능성양말 몇 켤레를 포장해 보냈다. (다행히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김영란법에 해당되지 않는다.)




엄마의 촌지와는 모양은 달라도 마음은 똑같게 말이다.

내 아이 좀 한번만 봐주쇼...화가나도 한번만 참아주이소. 화가나도 웃어주이고... 하고 속으로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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