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갑자기 미국 유학을 제안했다.
엄마에게 자식의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자식 농사의 정말 최종, 최최종, 마지막 단계일까?
엄마, 아빠는 나의 결혼을 반대했고 1년여 동안 지루한 싸움을 했다.
나의 28살.
갑자기 통금이 생겼다.
결혼할 남자가 있다는 말을 한 후부터 뜬금없는 통금 시간이 생겼다. (말한 내가 바보지..)
결국 나는 아빠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처음으로 아빠에게 대들었고
처음으로 아빠한테 뺨 한 대를 맞았다.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나는 1주일 뒤에 돌아오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가출을 감행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철학관을 찾았다.
어떻게 해야 잘 살까요.
철학관 사장님은 부모가 나를 왜 걱정하는지 알겠다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에게 물이 전혀없다…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철학관의 조언에 따라 내 이름 한자에 火를 모두 빼고 水 모두 넣어 바꾸었다. 결국 내 이름의 뜻은 밝음에서 늪과 이슬로 변하였다.
철학관에서는 나와 남편의 이름 안에 물이 많으면 결혼생활이 좀 더 나아질 거라고 했다. 도대체 이름 한문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또한 당분간 하늘과 가깝게 살아보라했다. 그래… 그러자.
몇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그렇게 어렵게 결혼을 허락받았다.
나는 내 딸들의 이름은 순한글로 지었다. 한문 이름으류 철학관에 드나들지 않도록.
나는 부모 말 잘 듣는 참 착한 딸이었다. 엄마, 아빠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28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딸을 전혀 모르는 남자에게 빼앗겨버리는 억울한 느낌마저 들었겠지. 30-40대 젊은 날의 즐거움은 뒤로하고 열심히 돈을 벌었고, 내 학업을 뒷바라지했다.
엄마친구 딸들의 결혼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다. 남자쪽의 외모, 학벌, 집안. 나는 어느 것 하나 부모에게 자신있게 자랑할 수 없었다.
외모, 학벌, 집안 짱짱한 남자들 다 만나봤는데 내가 만난 남자들은 나도 그도 서로 마음이 닿지 않더라.
워커홀릭이었던 나는 연애에 그닥 관심이 없었는데 갑자기 부모님께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다고 선전포고를 했고, 나는 그날. 내 입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긴장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가 기대했던 사윗감이 있었겠지. 하지만 딸의 남편감으로는 맘에 드는 구석이 한 개도 없었겠지. 그저 원수 같은 놈이고, 도둑놈이었겠지. 엄마의 가슴은 철렁 했겠지.
'어떻게 헤어지라고 설득하지? 뭐라고 달래 볼까? 연애만 하겠지?....'
엄마의 머리는 복잡했다. 실제 엄마는 나에게 뜬금없는 미국 어학연수를 권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학연수를 거절했다.
나는 어디서 그런 똥배짱이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처음으로 냉정하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며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맞서기 시작했다. 마치 이 결혼을 위해 지금까지 엄마에게 그렇게 착한 딸이었던 것처럼...
결혼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쁜 말로 날카롭게 엄마 가슴을 후벼 팠다. 마지막 방법으로 가출을 했다.
집을 나가면서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엄마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엄마도 나도 서로 6일 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다.
6일 후 문자가 왔다.
'일단, 집에 들어와라. 이야기하자'
나는 엄마와 집 앞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만났다. 나는 얼굴을 숙였고, 엄마는 내 얼굴만 바라봤다.
엄마는 나 없는 6일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날 쳐다보며 힘없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그 사람이 어디가 좋으니,,,'
'난 행복하고 싶어. 엄마'
나는 부모님의 기대치에 맞추기 위해, 솔직히 이야기하면 칭찬을 받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딸이었다.
애교 있는 딸은 아니었지만 엄마 아빠의 감정을 예민하게 잘 살피고 비위를 맞췄다. 새벽 장사를 하며 열심히 사는 두 부모의 건강을 끔찍이 생각했고 엄마의 말벗이 되어주었었다.
이 사람은 정말 결혼할 사람이었는지 나는 매 순간 단호함을 유지했다. 나의 결혼. 내 인생의 결혼은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결혼이지, 엄마 아빠를 위한 결혼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엄마 아빠의 비위를 맞출 수 없었다.
엄마 아빠를 위해 결혼까지 착한 딸 코스프레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결혼 허락을 받은 순간부터 결혼식 전 날까지 최대한 많은 시간을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엄마는 결혼 전날까지도 물었다. '그 사람이 어디가 좋으니?'
결혼을 준비하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좋아하는 장소를 다녔다. 최대한 많은 추억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국내외 여행을 했고, 팥빙수를 먹으러 다녔다.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엄마가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혹시 내가 불행해질까 봐, 철학관에서 말한 것처럼 고생 투성이인 결혼생활을 겪을까 봐, 가능하면 좀 더 준비된 사람과 결혼하면 내가 좀 더 편할 테니까. 그 남자가 널 사랑하면 좋고, 직업이 탄탄하면 좋고, 가정이 좋으면 더 좋고.
남들에게 보이기에, 남들에게 말하기에 완벽한 결혼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부모들은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 그 자체로 엄마가 응원해주길 바랬다. 나를 믿고.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한 어른이고 성인이니까.
엄마는 그렇게 못 미더운 사위를 어렵게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머리로 받아들인 사위를 위해 처음으로 육개장을 손수 끓이고, 사위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남편의 기호는 크게 상관없다. 내 자식들에게 해왔던 것처럼. 엄마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사위에게 주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