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아빠가 보고 싶을 때가 있겠지.. 나처럼
8남매의 둘째 딸. 우리엄마
어린 8남매가 함께 사는 집을.. 지금 상상할 수 있을까
두 아이 키우기도 너무 버거운 지금. 8명이라니...
#58년생인 엄마 세대에는 8남매는 흔한 가족 구성이었다고...
외할머니가 예전에 지나가는 말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밭 매다가 아기가 나올 것 같으면 애 낳으러 갔어. 그리고 애 낳고 나서 하루 쉬고 다시 밭 매러 나왔어."
"에?..........."
대가족의 삼시 세 끼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대.
엄마라는 사람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다가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엄마는 어떤 성격의 부모 아래에서,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을지..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실마리라고 생각했다.
8남매는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늘 8분의 1로 나눠가졌어야 했을 것이다.
각자 관심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얼마나 치열했을까. 얼마나 눈치를 봤을까.
맏이는 맏이의 책임감으로 칭찬받고
막내는 귀여움으로 칭찬받고. 엄마는 8남매 중 둘째였는데 특히 독립적이고 야무진 성격으로 집안일도 공부도 잘했다고 한다. 시험 전날, 가마솥 앞에서 불을 때면서 책을 봤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외할머니는 지금까지도 억척스럽고 독립적인 엄마에게 의지하시는 것 같다.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야간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동생들의 학비까지 마련해서 보태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런 둘째 딸을 속으로는 대견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의 성격은 어디서 왔을까?
#엄마의 성격
독하다 / 의심이 많다 / 다혈질이다 / 감정적이다 / 눈치가 없다나는 이런 엄마의 성격을 그다지.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닮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요즘 내 행동과 생각을 가만히 돌아보면 점점 나도 엄마를 닮아간다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무섭다.
할아버지 염습이 시작됐고,
엄마는 할아버지가 보이는 방의 창문을 쓸어내리며 주저앉아 오열했다.
엄마는 울면서 아빠...아빠...라고 했다.
엄마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침이 범벅된 그런.. 얼굴이었다.
엄마는 외모도 성격도 외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손자들에게도 엄격하고 무서우셨다.
다정다감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무섭기만한 아빠였다. 엄마의 아빠는 손자, 손녀 앞에서도 웃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셨다.
내가 어렸을 적에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가 너무 무서워 실수하지 않으려 항상 긴장했고 항상 할아버지 앞에 불려갈 때면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다.
엄마의 위로나 응원이 필요할 때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참아."였다.
참고 버티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몸이 아파도 혼났고, 실수하면 더 혼났다.
내가 중학교 시절 성적이 많이 올라 자신 있게 성적표를 내밀던 날. 언제나처럼
새벽시장에서 돌아온 엄마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가 얼마나 기뻐할까..를 상상하면서
나는 성적표를 흔들며,
"엄마, 나 성적 많이 올랐어!"라고 나즈막히 귓가에 소리쳤다.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며 잘했어!! 멋져! 말해주기를 바랬다.
엄마는 희미하게 웃으며,
엄마한테 칭찬받고 싶었다.
나는 무엇으로 칭찬받을 수 있을까
이제는 조금은 이해가 간다.
엄마도 속으로는 많이 기뻤을 것이라는 걸.
엄마도 나를 많이 사랑하지만 그 말은 속으로 말했다는 걸. 내가 그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는 걸..
엄마 시절에 육아는 누가 도와주었을까
육아책도 없었고, 친정엄마가 육아를 도와주지 않았다.
아이한테는 소리 지르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육아 전문가도 없을 것이고,
서로 육아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위로받는 맘카페도 없었겠지.
아무도 육아를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환갑이 된 엄만 이제야 손녀들에게 아낌없이 퍼주고 있다.
아주 다행히 내 딸들에게는 이쁘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해주신다.
내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칭찬도 내 아이들에게는 지나치게 많이 한다.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감정표현을 하기 시작한 엄마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