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무려 30년을 새벽시장에서 도매상으로 일했다. 내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일을 그만두고 늦깍이 주부가 되었다. 엄마는 전에도 요리를 거의 하지 았았다.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게 맞다. 엄마는 내가 결혼을 앞 둔 겨울에 가게를 정리하고 요리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가끔 남편이 신혼 초 이런 질문을 했다.
‘장모님이 잘 만드시는 음식이 뭐야?’
'잘 모르겠네'
'그럼, 좋아하는 장모님 음식은 뭐야?'
'음..글쎄...'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난감했다. 딱히 엄마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도,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딱 이 세가지 음식만은 떠올랐다.
초등학생 6년동안 소풍 당일 아침 식탁에는 매번 새벽시장 일을 끝내고 돌아온 엄마가 사온 마약김밥 2팩이 있었다. 엄마가 아침 퇴근을 하면서 새벽에 문을 연 마약김밥집에 들러 사 온 것이었다.
소풍 도시락이라는 건 엄마가 직접 싸주는 알록달록한 김밥이고 나도 그걸 원했지만 밤과 낮이 뒤바뀐 삶을 사는 엄마에게 그것까지 요구하는 철없는 딸은 아이었다. 나는 창피했지만 마약김밥 2팩을 들고 소풍을 갔었다. 당근과 단무지만 들어간..마약김밥. 초등학생에게는 조금 낯선 겨자 소스는 그 맛을 몰랐다.
그 당시 마약김밥은 나에게는 그저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창피했던 김밥이었다.
엄마는 영양가를 핑계로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손가락 만한 멸치를 갈지 않고 그대로 넣었다. 언제나 국 그릇에는 한 마리씩 건더기처럼 들어가 그 멸치를 씹어 먹지 않으면 혼이 났다. 먹기 싫어 토할 뻔 한 적도 있었다. 멸치를 갈아서 먹는 것보다 이렇게 통째로 씹어 먹는 게 진짜 더 좋은 걸까. 나는 엄마가 끓여주는 한달치 양의 국과 찌개를 그래서 싫어했다. 맛이 없는게 아니었다.
가끔 감기에 걸려 열이 나고 끙끙 댈 때면, 엄마는 나에게 잣죽을 해주었다. 얼마나 잣이 많이 들어갔는지 난 엄마의 잣죽을 먹고 난 이후 밖에서 잣죽을 먹지 못한다. 엄마의 잣죽은 잣이 80 쌀이 20이다. 잣을 약처럼 한 그릇먹고 나면 나는 감기를 잘 이겨냈다. 결혼 후에 감기에 걸릴 때마다 엄마의 잣죽이 꼭 생각났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 후에 아프니 엄마 잣죽이 생각났었어'라고 말했더니 바로 다음날 가평 잣을 듬뿍 넣은 잣죽을 보온 통에 담아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란.
나도 이제 요리를 한다. 엄마에게도 음식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떤 음식을 좋아했더라......생각해보니 엄마는 대게찜도 좋아하고 팥떡, 팥빙수를 좋아했다. 녹차아이스크림도 좋아했다. 김밥도 좋아한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잘 모르겠다. 어떤 요리를 해줘야 할지를 모르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모르다니. 결혼 후, 엄마의 생일날에 '엄마, 생일에 뭐 드시고 싶어세요? 라고 여쭤보면, 대답은 항상
'너희들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참 답답하고 짜증나는 말이다.
엄마와 첫째 아이와 함께 백화점으로 쇼핑을 갔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뭐 먹을래?'
엄마는 모유수유를 막 끊은 나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애기 때문에 못 먹었던 거. 평소에 먹고 싶었던 거. 얼큰한 거 먹을래? 매콤한 닭볶음탕먹을래? 집에가서 해줄까?'
엄마에게는 여전히 내가 일순위다. 우리 아이가 커서 같은 상황이 되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는 요리책을 낼 기세로 레시피북을 만들어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고 있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만능 양념장을 만들어 놓고, 비밀 레시피를 따라 김치를 담근다.
정말 다행으로 생각보다 엄마의 레시피가 남편에게도 잘 맞다. 사위가 육개장을 좋아한다고 하니, 항상 사다 먹었던 육개장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내주시고 손녀를 위한 이유식도 직접 만들어 준다. 엄마의 레시피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