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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메이커 Feb 10. 2022

커피에 휘핑크림이 올라가세요.

상품이 나보다 고귀해지는 사물 존칭의 불편함

커피전문점에 들러 아메리카노 대신 오랜만에 카페모카를 주문했다. 그러자 계산을 하던 카페 매니저가 내게 말하길, “카페모카는 휘핑크림이 올라가시는데 괜찮으세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몹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호감형인 카페 매니저의 얼굴. 표정과 몸짓은 상냥하기 그지없다. 얼굴에는 진심 어린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 아뇨. 휘핑크림은 빼주세요.” 그러자 휘핑크림을 빼주신 매니저는 웃으며 말했다.


“커피가 뜨거우시니 조심하세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 휘핑크림을 내려드리세요. 아뇨. 괜찮아요. 커피는 적당히 뜨거우시까요.” 왠지 이렇게 대답하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 도대체 휘핑크림이 나보다 대우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호텔이나 홈쇼핑, 백화점, 약국 등 에서 물건을 사람보다 높이는 극존칭의 사용이 일상화되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현상은 서비스업의 과잉친절에서 비롯하여 서비스직군에 재교육과 캠페인도 진행했었다.


'커피가 뜨거우세요. 오늘 내시경 검사도 있으세요. ' 언뜻 들으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사람이 정말 친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높임법의 잘못된 사용으로 나보다 물건이 더 존엄해지는 문장이 돼버린다. 위대한 한글의 오묘함인가. 이제는 가끔 존댓말과 사물 존칭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예를 들어,

*휴지가 뒤쪽에 있습니다.

**휴지가 뒤쪽에 있으십니다.

오히려 첫 번째 문장이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들리기까지 한 것은 나뿐인가? 왠지 휴지가 뒤쪽에 계셔야만 것만 같은….


아직도 홈쇼핑 채널에서는 쇼호스트가 화장품을 소개하며 극존칭을 사용하는 걸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 이 제품은 기능성 화장품으로,,, 미백과 수분이 동시에 해결되시고요…….” 그렇다. 이 화장품으로 말하자면 미백과 수분이 동시에 해결되시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화장품인가 말이다.



  '그 메뉴는 안되세요' ' 이렇게 하시면 되세요'  '주문되셨어요'

2019년도에 아르바이트생들을 대상으로 일할 때 많이 쓰는 엉터리 존댓말에 대해 조사를 했었는데 1위가 '그 메뉴는 안되세요' , 2위가 ' 이렇게 하시면 되세요' 3위가 '주문되셨어요'였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공공연하게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잘못 쓰이고 있는 경어법. 사물 존칭은 예전부터 문제 제기가 공공연히 되어왔지만, 언어가 가진 문화적인 특성 때문인지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물 존칭의 사용도 한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비호감이 된 카페 매니저


잘생긴 남자 카페 매니저의 “ 휘핑크림이 올라가세요..”라는 말은 잘생긴 외모가 갑자기 매력을 잃는 독특한 경험을 주었다. 나는 휘핑크림이 올라가시는 모카라테는 싫다. ㅎㄷㄷ 하다. OTL이다.







*2013년 미디엄에 썼던 본인의 글을 조금 수정하여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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