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이 나보다 고귀해지는 사물 존칭의 불편함
커피전문점에 들러 아메리카노 대신 오랜만에 카페모카를 주문했다. 그러자 계산을 하던 카페 매니저가 내게 말하길, “카페모카는 휘핑크림이 올라가시는데 괜찮으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몹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호감형인 카페 매니저의 얼굴. 표정과 몸짓은 상냥하기 그지없다. 얼굴에는 진심 어린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 아뇨. 휘핑크림은 빼주세요.” 그러자 휘핑크림을 빼주신 매니저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 휘핑크림을 내려드리세요. 아뇨. 괜찮아요. 커피는 적당히 뜨거우시까요.” 왠지 이렇게 대답하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 도대체 휘핑크림이 나보다 대우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호텔이나 홈쇼핑, 백화점, 약국 등 에서 물건을 사람보다 높이는 극존칭의 사용이 일상화되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현상은 서비스업의 과잉친절에서 비롯하여 서비스직군에 재교육과 캠페인도 진행했었다.
'커피가 뜨거우세요. 오늘 내시경 검사도 있으세요. ' 언뜻 들으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사람이 정말 친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높임법의 잘못된 사용으로 나보다 물건이 더 존엄해지는 문장이 돼버린다. 위대한 한글의 오묘함인가. 이제는 가끔 존댓말과 사물 존칭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예를 들어,
*휴지가 뒤쪽에 있습니다.
**휴지가 뒤쪽에 있으십니다.
오히려 첫 번째 문장이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들리기까지 한 것은 나뿐인가? 왠지 휴지가 뒤쪽에 계셔야만 것만 같은….
아직도 홈쇼핑 채널에서는 쇼호스트가 화장품을 소개하며 극존칭을 사용하는 걸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 이 제품은 기능성 화장품으로,,, 미백과 수분이 동시에 해결되시고요…….” 그렇다. 이 화장품으로 말하자면 미백과 수분이 동시에 해결되시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화장품인가 말이다.
2019년도에 아르바이트생들을 대상으로 일할 때 많이 쓰는 엉터리 존댓말에 대해 조사를 했었는데 1위가 '그 메뉴는 안되세요' , 2위가 ' 이렇게 하시면 되세요' 3위가 '주문되셨어요'였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공공연하게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잘못 쓰이고 있는 경어법. 사물 존칭은 예전부터 문제 제기가 공공연히 되어왔지만, 언어가 가진 문화적인 특성 때문인지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물 존칭의 사용도 한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까?
잘생긴 남자 카페 매니저의 “ 휘핑크림이 올라가세요..”라는 말은 잘생긴 외모가 갑자기 매력을 잃는 독특한 경험을 주었다. 나는 휘핑크림이 올라가시는 모카라테는 싫다. ㅎㄷㄷ 하다. OTL이다.
*2013년 미디엄에 썼던 본인의 글을 조금 수정하여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