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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짓는 사람 Feb 22. 2024

어디서 일한다고? 인쇄소?

출판사 편집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 지 14년이 되었다. 

한 10년 전의 일이긴 한데, 아버지가 전화로 아버지 친구 분께 자식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수화기 너머 친구 분은 딸이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 듯했다. 


"응, 그 인쇄소 다닌다나 봐."


옛날 80, 90년대에는 인쇄소에서 편집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출판사 역할도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특히 사보, 잡지 만드는 곳들에서)


출처: <유열의 음악앨범> 영화 주인공은 국문과를 졸업하고 사보 만드는 곳에 취직한다. 하지만 배경은 인쇄소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마감하면 한 달에 한 번씩은 인쇄소에 감리를 보러 가야 하니까. 

그래서 아버지는 "오늘은 인쇄소로 외근해요."라고 말한 것만 기억하시는 듯하다. 

아무튼 그때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어서, 6개월이나 수업을 듣고 인턴이라는 제도를 거쳐,

계약직, 정직원으로 차근차근 경력을 쌓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자세히 말하지 못했다.


이제와 말하지만, 인쇄소와 출판사는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아버지가 연세가 있고, 책을 잘 안 읽는 것과 별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는 건 알겠는데, 대체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저자가 되어 편집자와 함께 일해본 사람조차도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도 봤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 프로그램을 만드는 연출자, 음악을 지휘하는 지휘자는

무엇을 하는지 알지만 사람들은 책 만드는 감독인 편집자에 대해서는 왜 그리도 모르는 것일까.


편집자는 교정교열이나 하는 기계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저자의 수중을 드는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다.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한 총괄 감독으로서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마케팅하고, 인쇄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협업하며 진두지휘한다. 

그렇지만 드러나지 않고 뒤에 숨어 있는 것이 편집자에게 필요한 미덕이다. 

판권에 이름을 넣어주는 곳도 있지만, 그마저도 안 하는 곳도 있다. 

언제나 책 뒤편에 숨어 있는 존재로서 우리는 날마다 노동한다.


문제는 그러면서 편집자들의 자존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이 업계 특성상 출판 노동자는, 특히 편집자는 이상하게도 박봉 of 박봉이다. 

10년이 넘어도 같은 연차로 다른 업계와 비교하면 거의 신입 수준의 초봉 월급과 같다. 

내가 아무리 열심을 다해 일해도 노동의 대가가 적기 때문에, 

일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개인적인 보람과 성취감은 별개로) 


대개 출판업은 '마감과의 싸움'이다. 아무리 일이 손에 익어도 일정을 지켜야 하면,

베테랑 편집자도 영혼을 갈아서 일을 해야 한다. 

책이라는 특성상 프로세스가 아무리 동일하다고 해도, 매번 다른 콘텐츠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원고를 파헤쳐야 하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신입 때는 매일의 야근과 주말까지도 교정지를 싸들고 카페에서 일하고,

기획을 위해 자면서도 머리를 굴려야 했다.  

월급이 아닌 경력 쌓기를 위해 일했고, 그마저도 너무 힘들면 이직을 했다. 

그렇게 이직을 해야 그나마 '몸값'이 쥐꼬리만큼씩 올랐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일을 선택하고, 사랑하고, 

애쓴 이유를 적어 나가다 보면, 나와 같이 편집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더불어 이 일의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아무도 저자나 출판사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해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며 기획하고, 원고를 밤낮으로 살펴보고, 

갈고닦는 사람들의 노고가 있음을 알아챘으면 좋겠다.


  

출처: <유열의 음악앨범>  주인공은 경력을 쌓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전형적인 출판사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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