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이 위로, 그 마법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은 제 삶의 한 페이지를 참으로 빽빽이 채운 시간이었다. 특히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대소사가 겹치면, 저의 하루는 온통 '일'이라는 단어로 물들곤 했다. 시부모님의 생신이 되면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껏 상을 차려냈고, 그 모든 과정에 저의 진심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그림자로 남아있는 것은 역시 제사였다. 일가친척분들이 모이면 거실은 물론, 어느새 현관에까지 가득 들어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제사를 지내고, 함께 둘러앉아 음복을 나누는 시간까지 마치고 나면, 시계는 어느새 새벽 1시를 훌쩍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만의 시간이 시작되었으니, 바로 끝없이 밀려오는 설거지의 시간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을 묵묵히 씻어내고, 반짝이는 물기를 닦아 제자리에 넣어두고 나면, 몸은 천근만근, 정신은 아득해졌다. 모든 기력이 다 소진된 듯한 허탈감마저 밀려왔다.
그 모든 일을 마치고, 어두운 집안을 지나 겨우 방으로 돌아왔을 때, 제 몸은 그저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 같았다. 불 꺼진 방 안, 고요함 속에 깊이 잠든 남편의 옆자리에 조용히 몸을 뉘이려던 찰나였다. 그때, 나른한 남편의 잠결 같은 목소리가 제 귓가를 스쳤다. 나지막하고 또 나른했지만, 그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수고했어, 고마워."
놀랍게도, 그 순간 지난 몇 시간 동안 저를 짓눌렀던 모든 고됨, 마음 한구석의 서러움, 그리고 온몸을 지배하던 피로가 마치 마법처럼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힘들었다'는 단어로는 감히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제 마음이 그 한마디에 완전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마치 얼음이 따뜻한 물에 닿아 녹아내리듯,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경험이었다.
누군가는 그저 평범한 감사 인사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코 평범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의 노고를 진심으로 알아주고 헤아려주는 '인정'의 한 끗 차이였고, 고단했던 제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위로'의 한 끗 차이였다.
삶은 때때로 거대한 시련의 연속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시련 속에서 단 하나의 작은 빛, 바로 '한 끗 차이'의 진심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저는 그때 분명히 깨달았다. 그 한 껏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고된 시간마저도 소중한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