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으로 시작한 글쓰기, 그 후 이야기
몰랐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일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시작하는 편이다. 글쓰기도 그랬다. 처음에는 나의 스승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고 허기진 내면을 채우려는 본능적인 갈망으로 펜을 들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적 외로움을 메우기 위한 시도였다.
글쓰기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믿었다. 생각을 풀어내면 자연스레 문장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두루마리 휴지를 풀 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거라고 착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청담동성당 수필 반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이면 늘 날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글쓰기를 알면 알수록 두려웠다. 잘 써지지 않는 날엔 밤새 끙끙 앓다 겨우 한 줄을 쓰고는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마치 산을 오르는 것처럼, 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점점 더 버거워졌다. 말로 하면 술술 나올 것 같던 문장도 글로 옮기려 하면 어색했다. 맞춤법도 틀리고, 문맥도 엉성했다. 문장을 수정하는 일은 끝이 없었고, 가끔은 한 줄도 채 쓰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글 쓰는 것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었고 감춰두었던 감정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글을 통해 내 상처를 쓰다듬었다. 말로는 꺼내지 못했던 감정을 문장으로 풀어놓으며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글쓰기는 마치 화초를 가꾸는 일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밭을 일구듯, 컴퓨터를 켰고, 씨를 뿌리듯 단어들을 적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금세 무성한 글이 자랄 줄 알았다.
하지만 화초를 키울 때 포기하지 않고 물을 주듯, 글도 계속 써야만 했다. 알아갈수록 어려움이 많았지만, 꾸준히 써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컴퓨터를 갖추지 못한 수필 반의 노(老) 선생의 글이 카톡으로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글을 읽고 분석하게 되었다.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무엇을 빼야 할지를 고민하며 문장을 다듬었다. 문맥에 맞춰 요약하는 법도 차츰 익숙해졌다. 내 글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문제점이, 남의 글에서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렇게 남의 글을 다듬는 눈이 먼저 길러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등단을 했고, 책을 네 권이나 발간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책을 낸다는 기쁨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세상에 내놓고 보니 한동안은 벌거벗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침묵하고 잠수도 타곤 했다.
이제는 완벽한 문장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아닌 글은 쓸 수 없고, 시간이 키워줄 글을 믿기로 했다. 싹을 틔운 식물이 천천히 자라 꽃을 피우듯, 나의 글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통해 나를 찾아가고, 내면을 다듬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