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4일의 기록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5일의 어린이날은 나와 상관없는 날이 되어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지만 8일의 어버이날은 문방구 앞에서 오락게임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직장생활에 찌든 지금까지 항상 특별한 날이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것은 8일의 어버이날 때문이 아닐까. 평소 부모님에게 괜히 툴툴거리고 짜증, 응석을 부리던 사람들도 5월 초입에 들어서면서 어버이날을 괜히 의식한다. 그날만은 효자, 효녀가 되기 위해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나에게 어버이날은 참으로 큰 이벤트였다. 부모님이 나를 앉혀 놓고 '어버이날은 부모님들에게 감사하는 날이니 너도 우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라며 교육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어버이날을 유독 신경 썼다. 코나 찔찔 흘리며 다니던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 앞 문구점에 들러 '엄마 아빠 사랑해요' 문구가 적힌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사고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삐뚤빼뚤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편지를 드리곤 했다. 예쁜 카네이션 만들어 선물해 드리겠다며 없는 손재주를 한껏 부렸다. 큰 선물은 드리지 못했지만 진심을 다해 부모님에게 마음을 전했다. 부모님은 나의 마음을 받으시고는 웃음 지으며 고맙다, 했고 나의 하찮은 마음을 표현한 대가로 부모님으로부터 매번 큰 사랑을 받았다.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시절에는 어버이날을 잘 챙기지 못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고 사이가 나빠져서도 아니었다. 여전히 부모님에게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지만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그저 나는 내 삶을 살아내기 바빴다.
초등학생 때처럼 편지로 감사함을 전하기에는 너무 쑥스러운 나이가 되었고, 카네이션만 드리기에는 너무 철들었던 시절이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어버이날을 얼른 흘려보낼 때마다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어버이날에 용돈을 많이 드려야지'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버이날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보다 빨리 취업을 해서 제 앞가림을 하는 게 진정한 효도라 생각했다.
직장인이 되고 첫 어버이날을 보냈다. 그동안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액수의 용돈을 드리고 화려한 카네이션 꽃을 선물하니 부모님이 참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용돈을 받아 좋아하셨다기보다 '드디어 우리 작은 아들이 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하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한 마디로 '우리 아들 다 키웠다'라는 홀가분함을 느끼며 기분이 좋으셨던 것 아닐까.
어느덧 직장인으로서 8번째 어버이날을 맞이했다. 매년 어버이날을 보낼 때마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의 액수는 올라가고 있지만 '어버이날을 이렇게 보내는 게 맞나'싶은 회의감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어버이날은 평소 부모님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 아니던가. 물론 용돈을 드리고 카네이션을 드리는 것으로 내가 가진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버이날이 다가올수록 별 고민 없이 '이 정도 액수의 용돈을 드리고, 지난번과 다른 종류의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근사한 저녁을 먹고 오면 되겠지' 하고 어버이날을 그저 흘려보내려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 결여된 어버이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우며 자랐다. 물론 나에게 무언가를 억지로 가르치려 하신 건 없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며 자연스레 배운 것들이 지금 직장생활을 하는데, 삶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아버지로부터 자립심을 기르는 방법,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소한 실수를 털어내는 방법,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방법을 배웠고 어머니로부터 절약하는 방법, 주변 정리를 잘하는 방법,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방법을 배웠다. 부모님의 삶을 배우며 항상 그분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라도 그저 용돈을 드리며 어버이날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내가 했던 것처럼 내가 느꼈던 사랑과 느끼고 있는 사랑을 편지에 조금이나마 표현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사랑을 받았으면 그 감사함을 표현하는 게 옳은 일이다. 물론 용돈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