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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감기 시대에 극장은 사라질까?

극장소멸의 위기 (1)

by 박 스테파노

10년 만에 출간을 준비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영화 책’을 쓰는 것에 우려를 보냈다. 생각보다 잘 안 팔린다는 이유였다. 한국의 도서와 글 시장에서 ‘비평’은 인기 없는 주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항상 들어 있는 것이 ‘서평물’들이듯, 미국은 ‘북리뷰’가 큰 시장을 이룬 지 오래다. 그와 함께 제법 심도 있고 풍성한 영화리뷰와 비평 사이트와 잡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다. 영화에 대한 글이 글자가 그림보다 많으면 일단 읽히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 ‘영화리뷰’라는 콘텐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블로그 리뷰와 유튜브 리뷰다. 블로그 리뷰의 대부분은 사실 ‘평’이 없는 그저 ‘광고’ 수준이다. 여러 스틸컷을 나열하여 글로 썼지만 혀 짧은 목소리가 연상되는 단문으로 줄거리와 등장인물 정도를 요약하는 것이 전부다. 일종의 팸플릿을 블로깅 해야 했다고 할까.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유튜브다. 유튜브에서 영화 관련 콘텐츠는 대부분이 ‘줄거리 요약’이다.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1시간 넘게 영화 한 편을 진행 순서대로 ‘줄여서’ 보여 준다. 그것이 전부다. 초창기 유튜브에서는 ‘오롯한 관점’의 리뷰들이 제법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을 거쳐 가면서 온통 ‘줄거리 요약’으로 덮여 버렸다. 솔직히 개탄스럽다.



‘빨리 감기’ 세대의 문화 소비


흥미로운 주제의 책 한 권이 소개되었다. 2021년 일본에서 한 칼럼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DVD 잡지 편집장을 거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다 도요시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출현이 시사하는 무서운 미래>라는 칼럼이었다. 칼럼니스트는 ‘왜 젊은 세대들은 영화나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보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다방면의 조사, 그리고 그간의 경험으로 유추한 논리를 전개했다. 일본 내의 반응은 대단했다. 긍정과 부정, 동조와 비판, 공감과 반대의 양가 반응이었다.


아나다 도요시는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빨리감기 행태에 대한 사회, 심리학적 분석을 내어 놓았다. (출처=알라딘)


지금 세대와 세태에 대한 명쾌한 지적이라는 반응이 있었는가 하면, 왜 시청 방식을 강요하냐는 의견도 제법 되었다. 각자의 관점에서 품고 있었던 불편함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이에 이나다 도요시는 젊은 세대의 대표 부류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각계 전문가와 포커스 그룹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보충하여 원고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출간된 책은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빨리 감기’는 매우 개인적인 행태다.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에 비하여 매우 작은 현상이다. 그런데도 일본 사회에서는 제법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빨리 감아 보는 행태가 단순히 현상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본다는 말을 일상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생각해 보자. ‘영화 감상’이라는 말은 정말 꼰대 아저씨들의 이력서 한 편에 적어 내는 취미일 뿐이다. 요즘 세대들은 ‘콘텐츠 소비’라고 표현한다.


영화나 연극, 혹은 영상 ‘작품’이 한 조각이 되는 ‘콘텐츠’로 대치되고, ‘감상’이라는 제법 무게 잡은 말이 ‘소비’라는 일상의 것으로 치환되었다. 세대 차이와 분간을 강요하는 미디어 언론의 생태계를 탓하지 않아도 이런 사회적 현상에서 이미 세대의 특성은 나뉜다. 그 나뉜 특성을 솔직하게 대 놓고 마주하는 것이 일본의 사회이고, 한국은 눈치 보며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 차이만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이 한국에서 생각보다 회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빨리감기 시대의 트렌드 (출처=뉴스1)


본래 영화는 영화관이라는 장소에서 비싼 영사기로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제작한 영상물을 ‘보여주는’ 수동적 콘텐츠였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하는 여러 일상의 변모가 그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찾아보는’ 방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의 방송도 마찬가지다 IPTV나 OTT의 기능을 통해 건너뛰거나 빨리 감아 보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이를 뛰어넘어 영화를 잘게 편집해 10~20분 내외의 요약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하는 일은 점차 늘어났다. 이런 현상,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저자 이나다 도요시는 여러 이유를 유추했다. 넘치도록 생산되는 콘텐츠의 공급 과잉이 우선적인 이유다. 그리고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로 시간에 대한 이기주의자들이 급속도로 늘었다. 달리 말해 ‘시간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들의 증가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트렌드의 변화


세상의 콘텐츠는 사실 ‘헐값’이 된 지 오래다. 창작자나 제작자가 헐값의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확산이 되면서 공급 수요의 법칙에 따라 무한 공급에 가까운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는 비용이면 평생 보아도 다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스트리밍 하는 OTT를 구독할 수 있다.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들인 시간만큼의 효율을 어떻게 내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이를 '시성비(시간대비 성과)'라는 말로 당연지사로 삼는다.


이나다 도요시는 이런 현상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00가지 비법’ 같은 자기 계발서가 잘 팔리는 현상과 맞닿아 있다고 서술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다. 깊게 들어가기보다 풍성하고 많이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자신의 것으로 체득이 되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빠르게 실패없이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빨리감기와 자기계발서 열풍을 가져다 주었다. (출처=오마이뉴스 윤여동, 최종철)


이는 영화나 드라마의 콘텐츠의 미학적 질도 저하되는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서 ‘친절한 대화’가 넘친다. 상황이나 심적 갈등을 모두 대화로 내뱉어 버린다. 그것이 모자라면 내레이션으로 친절하게 상황 설명해 준다. 작가들의 역량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대사가 없는 부분을 요즘 콘텐츠 소비자들이 건너뛴다는 것을 파악한 콘텐츠 기획자들의 대비 방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세대는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일종의 ‘묘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을 나서면 모든 순간이 경쟁으로 느껴지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압박이 새로운 행태를 만들어냈다. 바로 '빨리 감기(배속)', '건너뛰기(스킵)', '패스트무비(몰아보기)' 현상이다.


비단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도 비슷하다. 영화관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관에서 부동자세로 2시간을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 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인내심 부족이 아니다. ‘시간의 이기주의자’는 절대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시간을 빈틈과 완충 지역 없이 빡빡하게 설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유튜브의 영상은 20분이 마지노선이 되었다. 쇼츠나 릴스가 유행하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10편 에피소드를 20분 만에 요약하는 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보여 준다. ‘영화리뷰’라는 간판을 단 인기 블로그는 어떤가. 이런 세태의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가짜의 범람’이다. 가짜와 복제가 판을 친다. 글도 마찬가지다. 이곳 플랫폼의 글들은 제대로 검수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베껴 써도 부끄럼 없는 시대가 되어선 곤란하다.


미안하지만 20대 이하의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현상을 ‘보통’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이 그렇다. 그렇다고 ‘너희들이 문제야’라고만 할 수 없다. 사회적인 두려움은 일종의 ‘공갈’에서 시작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언론과 어른들은 ‘세상 힘들다’며 겁주기 일쑤다. 일종의 ‘심신증’처럼 진단되지 않은 통증이 찾아온다. 무언가 급하게 쫓기게 되고, 시간을 허투루 쓰면 패배자가 될 것만 같다. 이것에서 ‘빨리 감기’로 대표되는 ‘콘텐츠 소비문화’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다. 안타깝지만 이 현상과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자고로 ‘트렌드’라는 것은 이런 작은 현상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기폭제를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흰소리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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