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영화 평론가에 따르면, 향후 1~2년간, 길게는 3~4년간 한국 극장가는 다시 외화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영 대기에 놓인 한국 영화가 많지 않다. 코로나 여파로 기획과 제작이 중단되다시피 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이라면 2024년에 이르면 거의 모든 한국 영화가 소진되어 버린다. 요즘 제작환경으로 볼 때 기획, 제작, 배급까지 보통 3~4년이 걸린다.
작년부터 제작이 전무한 현실을 볼 때, 2025~2026년은 한국 영화의 황폐기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가 되면서 한국 영화는 극장 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패의 요인이 되었다.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는 외화가 극장을 채워야 한다. 종전까지는 대체 순환 방식이 통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콘텐츠 소비 시대’가 도래하여 그 예측이 쉽지 않다.
'배분율'에 발목 잡힌 구조적 한계
극장 수익 배분 '배분율' (그래픽=박철웅)
영화 산업은 곧 극장 산업과 등치가 된 지난날이 있었다. 그 당시에 규정된 오래된 수익에 대한 배분 법칙이 아직도 작용한다. 그것을 보통 ‘배분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극장과 제작, 배급으로 양분하여 4:6(외화) 혹은 5:5(방화)로 입장 수익을 나누어 갖는다. 보통 극장 입장으로 수익이 생기면 부가가치세와 영화 발전기금을 제외하고 극장과 제작 측이 분율대로 45일 이내에 정산한다. 그리고 제작사는 배급수수료를 지불하고 투자자와 제작자가 사전에 합의한 비율대로 정산한다.
한국의 평균적인 투자:제작의 비율은 6:4로 조사된 바가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영화 제작비용 대비 손익분기를 가늠할 수 있는데, 보통 50억의 제작비가 든 경우 100만 명의 관객이 들어야 손익이 분기점을 맞이한다. 100만이 들어야 적자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마케팅이나 기타 비용을 고려하면 100억이면 300만 이상이 들어야 산업으로서의 수익이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래 표를 참조하면 이해가 쉽다. 출처=Tistory 블로그 ‘goodline')
손익분기점 하눈에 보기 (출처=goodline.tistory.com)
한국 영화의 공급이 줄어든 이유는 이 배분율에 근거한다. 작년 한 해 제작이 고사가 된 만큼, 외화가 버티어 주어야 하는데, 블록버스터가 지지대가 되어 주면서 각종 ‘작은 영화’가 명맥을 유지하는 대체 순환이 가능해야 극장 산업이 심폐 소생될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이론적인 이야기가 이렇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술 영화나 독립 영화들이 활성화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지만, 콘텐츠의 소비 형태는 반대로 가고 있다.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 작품들을 소비한 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제작과 개봉을 위해 투여되는 많은 자원과 노력, 시간 등 유무형의 비용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흥행 결과가 결정되는 높은 리스크를 갖고 있다. 또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도 높다. 이에 따라 많은 영화산업의 관계자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방법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런 내부의 고민은 확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와 기술의 발전으로 외부에서 큰 변화를 해오고 있다. 바로 OTT의 등장, IPTV VOD의 확산이다.
극장 입장 수익 (출처=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상망 KOBIS)
영화 전문가들은 한국 영화가 대목이었던 작년 여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또 다른 이유로 '외적 요인'을 언급하기도 했다. '코로나 대유행'의 긴 터널을 지나 간신히 막을 올렸는데 고물가와 경기침체 가른 또 다른 장벽을 마주했다. 자본은 불경기에 쉽게 수익을 창출하고 예측할 수 있는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다른 산업이나 분야로의 자본이동도 있지만, 콘텐츠 산업계에서의 지형 재편성도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다. 극장가가 얼어붙어 있을 동안 영상 콘텐츠 시장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등 새로운 경쟁 플랫폼의 등장으로 '구조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티켓값 인상,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약진 등 시장 구조 차원의 악재가 겹치면서 영화계는 안팎으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OTT의 맹공에 대책이 없는 극장가
실제 영화 티켓은 지난 코로나 팬데믹 2년 동안 25% 가까이 인상되었다. 현재 주말 일반관 기준 1만 5천 원 정도다. 솔직히 이 금액이 높은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여러 가지다. 그러나 지갑에서 지출하는 소비자의 체감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 사이 OTT 플랫폼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한 '2021 한류 백서'에 따르면, 국내 OTT 시장은 2020년 약 9,935억 원 규모에서 2025년 1조 9,104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OTT의 콘텐츠 제작은 여러 형태로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그 수익의 배분도 제작하는 주체에게 조금 더 이익이 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물론 그 제작에 거대 플랫폼 자본이 침투된다는 위협은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손익계산표 상으로 극장보다 OTT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이득이다. 이제 사람들이 영상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 극장으로 가는 경향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극장의 관객이었던 대상이 집구석의 콘텐츠로 변모한 것이다. 통신사들도 해외 유명 OTT 플랫폼과 독점 계약을 추진하며 출혈 경쟁을 하기도 했다. 이전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 플러스를 독점 계약한 LG U+의 경우 플랫폼에 90%의 수익을 돌려주고 있다. 다른 국내 콘텐츠나 방송국과는 5:5의 계약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콘텐츠 수익 모델 비교 (출처=한화투자등권 리서치센터)
단지 산업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콘텐츠, 즉 작품의 질적인 저하의 우려가 감지된다. 우선 러닝 타임을 1시간 40분, 즉 100분 이내로 가두어 제작한다. 이야기의 조밀과 영상미, 그리고 은유적 서사보다는 고화질 영상에 초점을 맞춘 제작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빨리 감기’ 문화와 플랫폼 자본의 수익 극대화라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이전의 예술 영화나 깊이 있는 스토리 텔링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이에 대한 반응은 ‘감상의 비평’이 아닌 ‘소비의 리뷰’로 그치고, 이 소비에 대한 경험 공유가 대세인 양 트렌드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이제 책을 읽기 힘들어하는 경향을 넘어 영상을 보고 사유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지점에 대한 고민과 공론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