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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듯 다른 매력의 첩보 스파이 드라마 두 편

넷플릭스 <블랙도브>, 웨이브 <데이 오브 더 자칼>

by 박 스테파노 Jan 05. 2025

시절이 하 수상하고 세상이 미친 듯 돌아간다.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안절부절이다. 눈과 귀를 돌린 독서도 시청도 감상도 모두 다 집중하기 어려운 일이 되곤 한다. 눈과 귀를 기울이려 노력해도 마음은 이미 다른 생각들로 북적인다. 이럴 때면 멀리했던 술 한잔이 생각나고 그저 잠을 청하는 것이 가장 나은 일이라고 체념마저 든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은 생각보다 제법 많은 일이니까.


이런 심리적 혼동과 소란으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도 영향을 받기 십상이다. 아얘 접어두고 보지 않던지 아니면 몰입해 시간을 잡아먹어 줄 콘텐츠를 찾아 나서던지 말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템플스테이나 명상, 피정의 방법이 있겠으나, 후자의 선택에는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에 한 손 거두는 의미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첩보, 미스터리물, 스파이 장르의 드라마 두 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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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블랙도브>, 웨이브 <데이 오브 더 자칼>은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이 있다. (출처=넷플릭스, 웨이브)



오래되었지만 지속 가능한 첩보 스파이 장르


스파이(spy)라는 영단어는 명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동사로도 영미권에서는 많이 사용된다. '스파이 같은 짓을 한다'라는 의미로 도감청, 미행뿐 아니라 엿보기와 따라가는 정도의 일도 spying이라고 표현한다. 스파이(spy)의 어원은 고대프랑스어 espire에서 기원한다. '밖을 보다', '숨겨진 사실을 찾아내다'라는 뜻의 espire는 에스피오나지(espionage)라는 첩보, 정탐활동이라는 명사형을 가진다. 영화계에서 첩보, 스파이 물을 '에스피오나지 장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영화 드라마에서 첩보, 스파이물 - 스피오나지 장르는 제법 오래되고 익숙하다. 그 옛날부터 연작으로 이어지는 <007>, <미션임파시블> 시리즈가 대표적이고 <24>, <블랙리스트> 같은 올드패션 드라마도 한 가득이다. <무빙>, <색계> 같은 작품도 뼈대 이야기는 첩보 스파이물이고 <잭라이언> 시리즈처럼 소설, 영화, 드라마로 원소스 멀티유징 되는 경우도 다반사가 되었다. 이처럼 첩보 스파이물은 이야기 사 장르에 적용하기에 많은 매력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서사의 장치는 암시와 복선이고 절정의 순간에 훅하고 들어오는 반전의 매력도 한몫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의 두 작품


넷플릭스 6부작 <블랙도브>와 웨이브의 10부작 <데이 오브 더 자칼>이 연말연시를 맞아 스트리밍 시작하였다. 두 작품은 첩보, 스파이를 다룬 에스피나지 장르라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눈에 띈다. 우선 두 영화의 주된 무대가 영국이다. MI5, MI6 같은 익숙한 영국 첩보기관이 등장하고, 듣기에 따라 매력에 빠져 드는 영국 억양의 영어가 가득하다. 그리고 대표적인 연기파 영국 배우 키아나 나이틀리와 에디 레드메인이 타이틀 롤을 맡아 작품의 무게를 더한다는 점이 유사하다.


넷플릭스 <블랙도브>에는 키아나 나이틀리, 벤 위쇼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한다. (출처=넷플릭스)넷플릭스 <블랙도브>에는 키아나 나이틀리, 벤 위쇼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한다. (출처=넷플릭스)


두 작품이 서로 다른 매력도 제법이다. 우선 <블랙도브>는 헬렌(키아나 나이틀리)이라는 여성 스파이가 영국 고위 정치계에 신분을 속이고 잠입해 정보를 거래하다 사건이 생긴다는 설정이다. 10년 동안 외무장관의 아내로서, 쌍둥이의 엄마로서 철저히 정체를 숨긴 체 잇권이 되고 거래 가치가 있는 정보를 빼내는 '블랙도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던 중 한순간의 일탈로 외도하던 상대 제이슨(엔드류 코지)이 암살당하고, 중국과 미국이 개입된 외교 트러블 한가운데 놓인다. 그녀를 지키러 '트리거(일종의 해결사)'인 샘(벤 위쇼)까지 소용돌이치는 상황에 휘말리며 사건 해결과 수습을 해 나가는 이야기다.


반면 <데이 오브 더 자칼>은 암중 활약하는 잠입 스파이가 아닌 암살자 자칼(에디 레드메인)이 드라마를 이끈다. 자칼은 최고의 레퍼런스를 자랑하는 성공률 높은 해결사이자 암살자다. 신출귀몰하며 변장에도 능한 자칼은 유럽전역을 누비며 미션을 수행 중이다. 그를 끈질기게 추격하던 영국 정보기관 MI5 요원 비앙카(라샤나 린치)와 마주치면서 일들이 꼬여 가고 맡겨진 임무수행과 거듭되는 위협을 그만의 방법으로 파훼하는 스케일 큰 드라마다. 원작은 1971년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쟈칼의 날>이라는 첩보 소설이고, 1974년 전설적인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동명 영화가 개봉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으로는 1991년 브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가 출연한 <자칼>이라는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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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974 <쟈칼의 날>, 1997 <자칼> (출처=익스트림 무비)


두 드라마의 차이는 확연해 보인다. 무거운 설정과 광대한 스케일의 <데이 오브 더 자칼>과 코믹한 요소와 단일 사건을 영국 내에서 쫓는 <블랙도브>의 색은 차이가 있다. 무겁고 큰 스케일이지만 경쾌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의 <데이 오브 더 자칼>과 크리스마스 시즌의 이야기이고 웃음 코드가 있지만 다소 지루한 전개의 <블랙도브>에 대한 후평도 엇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가진 매력의 방향이 다르기에 취향에 따라 선택하거나 시간을 좀 더 들여 둘 다 관찰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된다.



드라마는 가끔 현실이 된다


사실 첩보, 스파이, 암살 같은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과 꽤나 거리가 있었던 소재들이다. 그 거리감과 낯섦이 이 장르에 빠져드는 또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기묘한 현실을 마주하는 오늘, 첩보 스파이 암살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들린다.


권력상실의 두려움으로 군인을 국회와 선관위에 들여보내는 것도 모자라 정당대표, 국회의장, 언론인 암살이라는 공상 소설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뿐인가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고 몽골에서 요인을 만나 국지전 도발을 획책했다는 황당하고 허망한 기사들까지 쏟아지고 있다. 냉전시대에 민감했던 사실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이제는 팝콘과 맥주 한잔으로 그 시절을 유추하는 수단이었던 첩보 스파이에 암살이라는 드라마는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블랙도브>와 <데이 오브 더 자칼>, 두 작품에서 스파이와 암살의 배후는 특정 정치 이념집단이 아니다. 오로지 이권(利權)에 영합하는 무리들이나 그 무리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종사하는 부역자나 브로커들이다. 이들에게 커다란 담론이나 대의명분은 필요 없다. 그저 내 정치적 입지에 걸림돌이 되거나 내 이익에 반하는 일을 도모하는 사람을 처단하길 원할 뿐이다. 이들의 도구가 되는 스파이나 암살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과 사랑이라는 뻔하디 뻔한 가치수호를 위해 이들의 명령과 주문을 의심하고 회피, 거부하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한다.


가끔은 이런 상상도 꿈꾼다. 단 상상만. 웨이브 <데이 오브 더 자칼> (출처=Wavve)가끔은 이런 상상도 꿈꾼다. 단 상상만. 웨이브 <데이 오브 더 자칼> (출처=Wavve)


의무복무를 위해 군에 간 청년들을 자신의 인신 구속을 막아 보고자 대문밖에 스크럼을 짜고 방패삼은 이를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고민이 깊은 요즘이다. 영화 속 솜씨 좋은 해결사들의 손을 빌어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타계하고 싶은 마음이 저마다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성숙한 시민이 아니던가. 울분과 분노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날려 버리고, 광장 위에 길 위에서 대신 싸워 주는 동료시민을 위해 마음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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