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단상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도움을 제법 주신 아내의 지인이 스타벅스 쿠폰을 보내 주셨습니다. 점심을 이 쿠폰으로 해결하기 위해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습니다. 매장 내 손님은 저희와 독서하는 아저씨 한분뿐. 스피커를 통해 90년대에나 유행했을 듯한 얼터너티브 락킹이 퍼지지만 이처럼 고요하다니요. 아니 고독한 것일까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탄생 이전 조부모님 이하 친가 식구들이 집단 상경한 탓에 귀성이라는 말은 뉴스에서나 들어 보는 말이 되었습니다. 경기 남부 용인으로 이사하셨던 부모님께 가던 길이 인생의 유일한 귀성길이었습니다. 그 짧은 길조차 설 전 이동과 차례 후 귀경길은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정체를 이루기 십상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정체에 짜증 난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던 그 어떤 날이 떠 오릅니다.
"왜 이리 막혀?!"
사실 주정차하지 않는 고속도로, 전용도로에서의 정체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비상식입니다. 나들목이 막혀서 정체가 난다는 말도 증거 부족입니다. 이론상 고속도로의 주행은 전국의 모든 차가 튀어나와도 막힘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출발과 도착은 고속도로 위가 아니고 도로에서는 모든 차량이 "주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막힐까요? 이런 현상은 교통, 도시 공학자들의 오랜 연구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정체를 "유령정체"라고 합니다. 마치 유령이 길을 막은 듯 정체가 되고 풀리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많은 연구 끝에 유령정체의 원인은 여러 이유가 있는 '감속경향'에서 찾았습니다.
우선 차들이 쏟아지듯 증가하면 운전자는 부지불식 간에 차간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감속을 한다고 합니다. 이 감속의 여파가 나비효과, 파도효과처럼 점점 증폭되어 결국 정체로 이어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차선 변경'이 더 큰 이유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운전 중 운전자는 늘 머피의 법칙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듭니다. 내 차선 외의 옆차선의 차들은 진행이 빨라 보인다는 착각입니다. 이론적으로 모든 차들이 자신의 차선을 고수한다면 도착은 공평하게 달성됩니다. 그러나 차선에 대한 손해감정이 차선의 변경을 행하게 만들고 이 차선 변경은 감속의 증폭을 배가시켜 정체의 주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이기적 유전자가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일이 고속도로 위에서도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길 위의 부침은 욕심에 근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남들보다 앞서고 싶은 욕구가 결국 길 위의 정체를 만듭니다. 내 앞길의 정체도 만들지만 내 뒤를 잇는 이들의 정체를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나의 욕심은 정체를 유발한 '유령'이 된 것이지요.
욕심의 결과는 이처럼 자신만의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근거 없는 욕망을 다스릴 때 우리는 모두가 공평하게 결승점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최근의 젊은이들의 우경화를 보며 추월의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뒤처져 있다는 착각, 그 뒤쳐짐이 내가 아닌 남의 탓이라는 무근거의 몰이해, 그리고 추월의 방법은 칼치기나 갓길 주행 밖에 없다는 극단적 미성숙 판단이 잠재되어 있는 듯합니다.
9 수로 겨우 율사가 된 검사의 추월 욕구,
여러 문제로 전역한 퇴물 군인의 추월 욕구,
진급이 정체된 현역 군인, 공무원들의 추월 욕구,
소위 SKY가 아닌 대학출신 전산직 경호관의 추월욕구,
방구석의 키보드 워리어 루저들의 전복의 욕구.
이 모든 추월의 욕구가 이 사회를 멈추게 만든 유령은 아닌지.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욕구를 드러낼 잠재적 유령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빨간 날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고로 정체 때는 차선유지가 가장 빠른 법입니다. 진리에 가까운 사실입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