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글을 읽습니다. 스쳐 지나면서 읽었던 짧은 글들이 끌려 책을 찾아보지만 서점에서도 쉬이 찾기 힘들더군요. 신형철의 물음은 '슬픔'입니다. 이 주제가 사실 편치 않더군요. 그는 자신이 슬픔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이 가장 슬프다던데, 정작 자신이 슬픔인 사람에게 그 말은 멀리 떠나는 메아리 같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타인의 뒷모습에서 얼굴을 찾는 일이라는 말에 마음이 덜컹거렸습니다. 제법 괜찮아졌다 생각했는데 잠들려 누운 자리에 이런저런 속상함이 우두커니 지켜 서있습니다. 남들의 모습이 이리도 부러운 적이 있을까요. 따뜻한 밥 한 끼, 그럴싸한 커피 한잔, 작은 성취의 기쁨, 멋쩍은 자랑, 그리고 소중해 보이는 인연, 사랑, 우정, 가족.
소중한 것들은 늘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냥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사라진 것인데도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랑, 평화, 우정, 건강, 행복. 대신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오겠지요. 참회, 성찰, 사유, 고백. 들고 나는 모든 것들은 늘 뒷모습만 기억하나 봅니다. 그래서 인간은 무릇 슬픕니다.
신형철은 참는 자와 참을 수 없는 자가 따로 있다 말합니다. 참을 수 없는 자들은 늘 참을 수 없다 말하며 참지 않는다 합니다. 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는 자는 그냥 참는다 말합니다. 슬픔이 자신인 사람은 오랫동안 울음을 참아 온 것이 자신이면서 정작 자신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합니다.
그의 말에 작은 위로 삼아 잠시 마음 머뭅니다.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 낸 사람만을, 바꾼다."
죽음을 생각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은. 누군가의 섭리로 다시 희망을 부여잡습니다. 죽음을 극복하면 모든 것을 극복한 것이라는 말을 품고 살아 냅니다. 여러 버거움에 여전히 응원은 유효합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