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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생각

시를, 가끔 짓다

by 박 스테파노

울 할매 보고 싶다

내 반토막만 하던 울 할매

일바짓춤에서 주춤 주춤 꺼내던

요술 같은 쌈짓돈이 그리워서만은 아니다

국민학교 1학년 받아쓰기 불러주던 경상도 할매

용케 받아쓴 내가 대견해서만은 아니다


자리 반쯤 누운 지 십여 년 지나 눈이 펑펑 오던 날

막내 군대 가기 전 위문편지 아끼려 그리 가셨나

파킨슨씨를 만나 손이고 몸이고

가만히 둘 수 없는 이 세상 보속을 다하고

기도인지 졸음인지 알 수 없는 반들반들해진 묵주를 들고

그 좋아라 하던 하얀 밥을 입에 담고

뭘 그리 급히 가셨나


장판 까맣게 눌러 버린 아랫목 보루

땅콩엿은 이제 하얗게 늘려 먹을 일 없고

아침 인사대신 두 손 잡아 힘껏 일으켜 줄 일 없고

고모들 뒷담화를 엄마에게 이를 일도 없다


세상이 바삐 돌아 수 만 년도 넘어 선 날에

반쯤 자리 누운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참 외로웠을 그 누운 자리 보루 위 꽃이라도 피었으면

아웅 다웅 다투고 이내 껴안아 주던

조그만 할매가 보고 싶다


다음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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