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이웃은 누구더냐?
번갈아 나누어 받는다
한 번은 붉게 차오른 것을 또 한 번은 누렇게 바래진 것을
상처가 되고 흠결이 되어 밖으로 세어 나올 때는 늘 빨갛게 달아오르던 것이
받아들일 때는 붉게 한 번 누렇게 한 번 그렇게 나누어 받는다
누군가의 선의로 나의 위급하다 못해 절실한 의지로
남이 준 붉고 누런 것을 나누어 받는다
제법 뾰족한 바늘로 피부 아래
보이지 않는 핏줄을 찾아 찔러 넣고
헌혈은 하는 일이고 수혈은 받는 것이라나
동사로 갈라진 시혜와 수혜의 입장은
그저 나름 나름의 이야기를 남기고
선뜻 해준 일을 고마움으로 받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순간
누가 네 이웃이냐고 재차 물었던 예수의 채근에
차마 틀린 존재라 여기던 사마리아놈이
이웃이라 대답 못하는 율법학자처럼
나는 누군가의 이웃이 된 적 없어도
누군가는 나의 이웃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되뇌이며
아멘처럼 가슴에 담는 말
가서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피부 아래로 삽입되는 바늘은 늘 한 번은 붉고 또 한 번은 누런 기억을 밀어 넣는다 바늘 끝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 안을 따라 흐르는 것은 타인의 아침 누군가의 오후 헌혈의자에 앉아 있었을지 모를 무명의 시간이 내 혈관을 통과할 때 나는 나였던 적이 없다 상처가 될 때는 언제나 내 것이었지만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 시간은 세상의 몫이다 나는 무너지고 있는 중에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의 심장에서 건너온 빛을 나의 어두운 속살에 안치하며 숨을 잇는다 의식은 흐리고 몸은 식어갈 때 누군가의 열기로 가득 찬 혈장이 내 핏줄에 불을 붙인다 정맥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가장 물리적인 장소가 된다 그것은 계율도 아니고 기도도 아니고 단지 적합한 혈액형일 뿐이지만 그 익명의 일치야말로 내가 끝내 이웃이라 부르지 못했던 사마리아인의 얼굴을 닮는다 선의는 때로 냉정하고 절실함은 때로 조용하다 주는 자는 잊었겠지만 받는 자는 잊을 수 없는 법 시혜와 수혜의 경계는 동사 하나로 갈라졌지만 생과 사의 경계는 한 방울의 따뜻함으로 기워진다 붉고 누런 것이 번갈아 나를 살리고 나는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한 적 없을 수밖에 없다 누가 너의 이웃이냐고 물을 때 나의 입은 말문이 막히고 나의 몸은 이미 대답하고 있다 살고자 하는 것이 죄라면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 구원을 향해 범죄한다 그러나 아멘이라는 말로 덮어 씌워지는 이 죄책은 언제나 누군가의 피를 통과해 내게 도달한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되뇌는 것 말로 말이 되기 전에 피로 피가 되기 전에 말없이 순명하는 것 가서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