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단상
1.
제법 긴 연휴의 끝자락에서야 햇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단둘이’ 보내는 추석 연휴에 아내의 생일까지 겹쳐 있어,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마무리되어야 할 일들은 끝내 마무리되지 못한 채 내일, 또 내일로 미뤄졌다. 그렇게 맞은 연휴는 평소보다 한층 고요했다. 공사장 소음도, 골목의 취객들도 사라진 탓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는 것만이 작은 위안이었다.
2.
대통령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언제나 비판의 빌미가 된다. 그 뒤를 잇는 원색적인 비난과 궁색한 옹호, 어느 쪽도 명절의 평화를 깨는 잡음일 뿐이다. 비난이야 진영의 본능이라 치더라도, 문제는 옹호의 언어와 정부·여당의 해명에 있었다. K-푸드 산업과 콘텐츠 홍보가 목적이라니. 어휴. K-푸드의 글로벌 팬덤이 산업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OTT를 통한 콘텐츠 활성이라는 변명 끝에 넷플릭스의 이름이 등장하니, 다시 어휴. 문화 컨트롤 타워의 통찰력 부족을 스스로 드러낸 고백이었다. 그저 명절 식탁에 이야기거리를 위해 나왔다는 담백한 변은 어땠을까.
3.
<어쩔 수가 없다>가 배급망의 위세를 등에 업고 선전하는 모양이다. 절대 강자 CJ의 추석 배급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수작이라 불리는 PTA의 <One Battle After Another>의 스크린 수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만큼 영화가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그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나 영화산업의 국수주의로만 읽는 것은, 오래된 갈등과 충돌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아쉬운 주장이다.
4.
사실 문제의 핵심은 한국 영화 콘텐츠의 가치사슬이 이미 무너졌다는 데 있다. 부가판권 시장이 무력화되어 극장 수익에 80%를 의존하는 구조적 기형이 근본 원인인데, 그 누구도 이 구조를 말하지 않는다. 미국 직배사의 횡포적 협상 역사, 세금 한 번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고용 창출도 미미한 행태 역시 외면된다. 배급사뿐이랴. OTT는 어떤가. 넷플릭스는 구글을 닮아가고, 디즈니는 극장과 척을 지며 스트리밍 구독으로 손쉬운 이익을 취한다. 그들의 조세 회피와 투자 행태에 업계 종사자들조차 침묵한다. 자칫 그마저 끊길까 두려운 탓이다. 트럼프의 공갈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5.
AI에 대한 사유의 연재를 브런치에 올렸다. 9월 초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주 6일 연재를 이어왔고, 지난주 퇴고를 마무리했다. 다만 에필로그를 다시 써서 전체 결을 맞추었다. 총 30화, 챕터당 1만 자, 공백 포함 30만 자의 원고다. 우선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할 예정이지만, 제안을 받는다면 적극 검토할 생각이다. 글들은 대부분 퇴고 수준으로 정제했으나, 주제의 복잡성 탓에 연재 과정에서 이탈과 보충이 불가피했다. 생각도 처음과는 조금 달라졌다. IT 산업의 전략기획자이자 마케터로서 현장의 감각으로 현상을 해석하려 애썼다. 어찌 되었든, 속이 시원하다.
6.
응원하는 야구팀이 가을야구의 다음 단계로 올랐다. 예년보다 마음을 덜 쏟았지만, 결과만은 늘 궁금하다. 야구는 언제나 평균과 일상으로 회귀하는 운동이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묘한 위안을 준다. 올해는 만년 하위권이던 팀이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했다. 그들의 응원가처럼, 그저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남는다.
7.
아내의 생일에는 올해도 선물 대신 손편지를 건넸다. 여전히 미안함이 앞선다. 다행히 여러 곳에서 대신 축하와 선물을 보내주었다. 크지 않은 선물들이 이상하리만큼 무겁게 느껴진다. 캐나다에서 개척 목회를 하는 분이 내 묵상글 ‘마르타와 마리아’를 읽고 감사를 전하며, 자녀의 결혼 상견례로 귀국한 김에 응원의 마음을 전해주셨다. 비루하고 서툰 글이지만, 계속 써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얻었다. 이렇게.
8.
극도의 가난과 극심한 통증이 남긴 유일한 선물은 ‘남을 미워할 틈이 없는 마음의 가난’이었다. 주변의 미움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눈에 거슬리고 귀가 따갑다면, 살며시 등을 돌리거나 잠시 피하면 그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계절이 깊어가며 문득 명동성당이 그리워졌다. 서른 해 넘게 대교구청 계단에 걸려 있던 어린 시절 내 그림은 이제 내려갔을까. 마지막으로 본 지 열 해가 훌쩍 지났다. 연휴가 지나면 삶이 조금만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아내의 무릎이 더 아파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