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주에
새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끝도 없을 것 같이 먼 하늘을 날아가는
저 언덕 너머 서고 나면
날아 넘은 그 고개 어디엔가
내 봄날은 힘을 잃어 멈춰 선 듯하고
이 땅에 거센 비가 내린 후
다시 자라난 여름이라는 희망도
어느새 어제가 되고
여름을 벗어던져
붉고 노랗게 무르익어 가는 익숙한 날이 오면
내 희망은 다시 자라날 봄을 꿈꾸며
겨울을 맞서겠지
그렇게 오늘을 살아
그렇게 살아내고 보면 다시 봄을 만나겠지
그래서 오늘을 또 살아
- 2023.10.28 작시 <만추> -
가을이 왔다 싶더니, 어느새 떠날 채비를 한다. 계절이란 늘 시작과 끝을 품은 말이었지만, 요즘의 계절은 느끼는 순간 이미 지나간 일이 된다. 단풍은 불붙기도 전에 낙엽이 되고,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 틈도 없이 잎을 떨군다. 심지어 정신없는 목련이 제철을 잊고 피어난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이렇듯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남는 것은 아쉬움뿐이다.
음력으로 아홉째 달, 가을의 마지막을 흔히 만추(晩秋)라 부른다. 옛말에는 계추(季秋), 모추(暮秋)라는 이름도 있었지만, 1960년대 동명의 영화가 2011년 리메이크되면서 ‘만추’라는 단어는 새삼 세대의 언어로 되살아났다. ‘만(晩)’ 자는 ‘늦다’는 뜻으로, ‘대기만성(大器晩成)’의 그 ‘만’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만추를 ‘늦가을’이라 읽는다. 그러나 ‘만’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저물다, 쇠약해지다, 스러지다. 그 어감이 유독 가을에 어울려, 유행처럼 계절의 끝을 장식하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저문다는 것은 단순히 기력이 다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한때의 분주함이 가라앉고, 마침내 고요가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의 한 장면처럼, 가득 찼던 시간이 조금씩 비워지는 순간이 바로 만추다. 그것은 시듦이 아니라 정리의 시간, 쇠약이 아니라 성숙의 시간이다. 봄과 여름을 지나 힘껏 살아낸 뒤, 서늘한 바람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는 계절. 만추는 그렇게 ‘저무는 것’ 속에서 ‘머무는 것’을 배우게 하는 시절이다.
어쩌면 지금, 나 또한 그런 만추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간이 지난 여름을 마무리하는 시기일지, 다가올 봄을 예비하는 시기일지 알 수 없지만, 다만 이 저물어가는 가을을 성실히 살아내고 싶다. 저무는 것들을 서둘러 보내지 않고, 그 안에서 한 번쯤 머물러 보고 싶다. 왜냐하면 모든 저무는 것은, 다른 이름의 새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