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글자의 유령 ― MBTI

투명한 감옥의 알파벳, 혈액형과 함께

by 박 스테파노

흰 가운을 입은 문장들이 식탁 위로 흘러넘친다

혈액 대신 시선이 응고되고,

우리는 서로의 혈관에 빨대를 꽂은 채

투명한 농담을 교환한다

1944년의 유령들이 짜 놓은 그물은 지나치게 촘촘해

나는 A형이라는 협소한 방에 갇혀

자기 자신을 밟지 않으려 소심한 보폭으로 원을 그린다

‘E’와 ‘I’ 사이, 국경 없는 첩보원들이 왕복하며

정체성을 밀수하고,

텔레비전 속 웃음은 잉크처럼 번져

우리는 열여섯 개의 표정 중 하나를 골라

가면처럼 얼굴에 고정하고 외출한다


어머니와 딸이 직조한 운명의 직조기 위에서

영혼들은 쉼 없이 노동한다

우월함을 증명하려던 독일의 냉혹한 메스와

질서를 가장한 일본식 왜곡이 맞물려

나의 성질은 조용히 규정된다

페루의 태양 아래, 모두가 ‘O’로 호명되는 사람들은

정말 같은 꿈을 꾸는 걸까

사각형 칸 속에 ‘예’와 ‘아니오’를 기입하며

우리는 스스로를 조각내어

규격이라는 침대에 몸을 맞춘다

취업의 문턱에서

나의 쓸모는 네 글자의 배열로 요약되고,

심장의 고동보다 지표의 기울기가 먼저 호명되는

정교하고도 치명적인 오답의 세계가 열린다


거울 속의 나는 통계적 허점 사이로 미끄러진다

니체의 고독도, 융의 무의식도

결국 마케팅의 비닐로 포장되어

오후의 서점 진열대에 눕는다

구별은 차별의 순화된 변명일 뿐이라며

누군가 얼룩진 문장으로 고백한다

내가 누구인지 쓰지 못한 백지 위에

세상이 문신처럼 정의를 새기기 전에

나는 나의 오류를 사랑하기로 한다

규정되지 않는 비명이 혈관을 따라 흐르고,

나는 열일곱 번째 유형,

혹은 끝내 분류되지 않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다


MBTI 채용?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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