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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Mar 25. 2022

버마와 미얀마 사이에서 소신과 편견을 보다

[이야기 NEWS] 소신의 탈을 쓴 편견의 이기적 유전자

어느새 잊힌 '미얀마의 봄'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345656

네옴 경남 미얀마 교민회 회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미얀마에서 쿠데타 후 군경의 총격에 의한 희생자는 3월 11일까지 1652명 이상 사망했고, 1만 2617명 이상 체포당했으며, 수배자가 1973명 이상이다"라고 했다. (중략) 그는 "군부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집에 방화하고 있으며, 집을 떠나 숲속으로 떠나는 피난민들이 매일 증가 하고 있다"며 "많은 시민불복종항쟁(CDM) 공무원들이 집을 떠나 월급도 끊긴 상태이고, 물건 값도 비싸고, 식품과 약품 등 일상생활용품이 부족한 상태로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했다. -기사 본문 중-


일 년 전 이맘때도 외신이 한창 바쁘게 타전된 적이 있었습니다. 미얀마 군부가 2021년 2월 1일 새벽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지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미얀마 군부는 성명을 통해 선거부정에 대응해 구금조치들을 실행했으며, 민 아웅 흘라잉 국방군 총사령관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밝혔습니다. 21년간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구금과 석방을 반복했던 수치 고문은 10년 만에 또다시 구금되었고, 2015년 53년 만에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 정부가 들어섰던 미얀마는 5년 만에 다시 군부 독재 체제로 돌아갈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불과 1년 전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1년 전 오늘인 2021년 3월 14일은 저항 운동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왔던 날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날 양곤에 있는 라잉따야 산업지구에서 중국인 소유의 공장 두 곳에서 불이 일어나자 이를 시위 군중의 소행으로 간주한 군부 보안대의 총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이곳 시위대를 포함하여, 전국에서 최소 115명이 군경의 총격 등으로 현장에서 또는 치료 후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전합니다.


AAPP는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최소 440채의 집과 건물이 파손되었고, 3월 10일 기준 시민 1642명이 쿠데타군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합니다. 또 9571명이 구금 중이고 834명이 법원 선고를 받았으며 이들 가운데 45명은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아직 1973명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라고 전합니다. 118명은 부재 상태에서 선고를 받았고 그들 중 39명은 부재중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총 84명이 사형 판결을 받은 상태라고 정치범지원협회가 밝히고 있습니다.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미성년자가 2명이 들어 있습니다.


민간인 시민의 희생은 쿠데타 1년이 지나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2명의 청소년들이 숨진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이 단체가 밝힙니다. 희생자들은 샨주 폐콘 출신이며 9일 사망했는데, 10살과 17살인 이들은 지난 6일 쿠데타군이 페콘 모비 지역을 침탈했을 때 집에서 붙잡혀 있다가 살해당한 것이라고 AAPP는 주장했습니다.


최근의 일이고 현재 진행 중이지만, 흔하디 흔한 해외토픽에도 나오지 않는 "외면받는 뉴스"가 되었습니다. 최근 지구촌의 일들 중 '홍콩 민주화 시위'와 '미얀마 쿠데타'가 우리의 지근거리의 가장 중요한 충돌과 갈등, 희생의 일들인데, 잊혔습니다. 지구 반대편이라도 현재 진행형인 '전쟁 이야기'야 그렇다고 해도, 일단락된 홍콩의 일보다 쉽게 묻혀 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3032415

리 총리는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2020년과 2021년 업무보고에서 외세의 개입을 강력히 비난하며 홍콩의 국가안보 수호 필요성을 강조했다. 라우시우카이 중국 홍콩마카오연구협회 부회장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중국은 홍콩에서 반중 세력이 진압됐다고 본다"며 "당분간은 중국의 전면적인 통치권과 '애국자'만 홍콩을 다스릴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본문 중-



버마와 미얀마 사이


'미얀마'보다 '버마'가 익숙한 세대입니다. '버마'로 기억되던 불교의 나라 '버마'는 1988년 미얀마 군사 정권의 집권으로 '미얀마 연방'으로 개칭되었다가, 2010년부터 정식 국명이 '미얀마 연방 공화국(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 Pyidaunzu Thanmăda Myăma Nainngandaw)'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미얀마 군사 정권"이 20년 만에 2010년 총선거를 앞두고 국기와 정식 국명을 변경한 것이지요.


사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작지 않은 이 나라에 대한 공식 호칭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습니다. 영국 등 꽤 많은 국가가 지금도 주야장천 버마(Burma)라고 부르고 BBC World News도 버마라고 부릅니다. (미국 CNN International은 미얀마(Myanmar)라고 부름) 과거의 명칭이었던 '버마'는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민족인 버마족의 나라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군부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 여러 민족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미얀마라는 표현의 어원도 결국 버마(벌판을 나타내는 어원 burm/burn에서 파생; 부르나이 등)이기 때문에 다민족 성을 표방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군부의 "의도"가 가득한 개명이라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거센데,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도 '버마'라고 불러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하곤 했습니다.

버마? 미얀마?

특히 미국 등 서방에서는 미얀마라고 안 부르고 그냥 버마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정통성에 관한 논란에서 비롯된 것인데, 미얀마가 군부에 의해 임의로 개칭된 국호라는 이유로 군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언론들이 주로 버마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버마와 미얀마로 부르는 언론사들이 따로 있습니다.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방한했을 때, 국내 언론사들에게 미얀마를 버마로 바꿔달라고 요청한 일화도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국내 체류 미얀마인들은 현재의 공식 명칭인 미얀마는 독재 군사정권이 일방적으로 붙인 이름이므로 버마라고 표기해 달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엄밀히 살펴보면, 버마와 미얀마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래 미얀마였던 이름을 영국이 식민지배를 하면서 버마족의 이름을 따와 버마라고 바꾼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 군부에 대한 저항으로만 미얀마라는 호칭을 부정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각종 문서(위키디피아 등)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버마'가 '미얀마'에서 변성된 것으로, '버마'든 '미얀마'든 버마족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합니다.


버마가 되었든 미얀마가 되었든 어원은 '벌판'을 말합니다. 마을을 이루어 살기 좋은 넓은 벌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2005년 수도를 '네피도 (왕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옮기기 전까지 수도였던 '양곤(랑군)'의 뜻은 "전쟁의 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니, 기구한 민중들의 고된 염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편견은 차별을 만든다


'아웅산 폭파 테러'로 기억되던 버마라는 나라는 작년 어느 날 '미얀마 군사 쿠데타'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 나라의 정치적 불안과 호소는 제법 되었습니다. 종각역에 이따금 드러내는 이들은 '버마-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도와달라는 재한 미얀마인들의 모임이 기억에 스쳐 갑니다. 저는 제대로 귀 기울인 적 없습니다. 그저 외국인 노동자의 요구 집회로 치부하기 일쑤였습니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와 함께 인도차이나 반도를 이루는 이 나라를 한 번 가보았다는 잘난 체만 있었지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82531

미국에서 80년 전에 인종차별적 기준으로 주거지 등급을 ‘위험지역’으로 설정한 구역의 현재 대기오염 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2배 높은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사 본문 중-


한국은 '인종차별(제노포비아)'이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국가 사회의 인적 구성 자체가 인종적 다양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현대 대한민국의 경우 제3세계 국가들인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카리브해, 태평양 등이나 제2세계 국가들인 동유럽,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의 국가 출신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사회 문제로 실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 대비하여 경제적으로 도태된 국가들을 그 경제적 후진성 하나로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정치·종교적 이유로 내전이 발생하거나, 국내 정책의 실패 혹은 특정 요소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경제 구조로 인한 성장 정체 등의 여러 요인으로 말미암아 최빈국 수준으로 전락하기도 했기에 국가의 경제적 위신이 그 국가 국민에 대한 판단으로 일반화되기 쉬웠습니다. 협소하고 편향된 세계사와 국제사회 교육의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두지 않겠다는 응답자 비율을 통계로 표현한 지도. 한국은 뚜렷하게 제노포비아 성향이 나타나는 편이다

또한 이들 국가의 사람들이 이른바 '코리안 드림'을 안고 산업연수생이나 저숙련 공장 노동자, 건설 노동자 등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체류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 무자격증 원어민 영어 강사들보다 고학력에 수준 높은 의식을 지녔음에도 국적과 인종만으로 차별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이상 붐업으로 종교적 이해도가 낮은 것도 한 몫하게 되지요. 유대인들은 기독교, 즉 예수의 존재와 부활 사건을 부정하는데도 이스라엘은 기독교 목사마저 추앙하고, 예수를 중대 예언자로 인정하는 무슬림들은 종교적 악의 축으로 여깁니다. 거기에 더해 "똘이 장군 신드롬"인 반공 정서도 가미됩니다. 공산권 국가들의 경우에는 북한이라는 주적과 그 뒤에 있던 흑막인 소련의 악명으로 인한 반공 정서 역시 중요 작용을 합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들과 뿌리를 같이하는 역사적 공동체입니다. 그런데도 서방과 공산혁명의 근원지라는 선긋기는 은연중에 계속됩니다. 몇 해 전 SNS 프로필은 온통 프랑스 국기 삼색기로 넘실거렸습니다. 파리 테러를 추모하고 테러리즘에 반대한다는 의미였지요. 동일 시기에 이스라엘의 묻지 마 폭격으로 죽어 나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철저히 외면되었지요. 아주 동일한 비유가 아니더라도, 우리 머릿속에 '미얀마'가 잊힌 이유가 유추되는 지점입니다.

소신은 늘 "선택"적이어서 문제


그 편견은 가끔 '소신'으로 포장된다


지구 반대편에 가까운 우크라이나의 땅에서 일어난 전쟁에 언론, 미디어는 물론 일반 대중들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저 "침공"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선과 악의 축이 판명 나고, 서방과 미국의 입장은 사실과 진실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인간의 최소한의 연민으로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역사적 고유가 된 민족 간의 상잔인지, 매우 복잡한 지정학적 역학의 셈법의 작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주위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 같기만 합니다. 역사책을 들여다볼 생각도, 하다 못해 나무위키 한번 열어 보지 않은 체 말이지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18/0005165905


다만 기존 표기를 버리고 바로 새 표기만 사용하게 되면 국민들의 언어 생활에 혼선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당분간 두 표기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국어원 측은 전했다. 이에 따라 키이우는 ‘키예프’, 르비우는 ‘리비프’와 ‘리보프’, 아조우해는 ‘아조프해’, 보리스필 국제공항은 ‘보리스폴 국제공항’, 하르키우는 ‘하리코프’, 시베르스키도네츠강은 ‘도네츠강’으로도 쓸 수 있다. -기사 본문 중-


최근 언론에서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키이우"로 부르기로 했다는 소식이 오버랩됩니다. 그 주장은 사실 언어학과 역사를 고민하지 않은 결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우크라이나어가 존재하지만 러시아어의 방계어이고, 러시아와 대척이 되면서 키릴 문자를 버리고, 단어와 지명을 러시아식에서 폴란드 음가 차용으로 바꾼 것이라는 사실은 묻혀 있습니다. '버마-미얀마'와 다르지 않은 맥락이지요.


가끔 편견과 차별은 '소신(所信)'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납니다. ‘소신’이란 감정에 휩싸이거나 외부의 영향을 받아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 표현이지요. 그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믿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인' 자기표현의 한 방식이 됩니다. 그러나 이 '의도'가 늘 말썽이 됩니다. 본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여기기에 선진적인 인간과 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만드는 선진사회는 각자가 자신의 언행을 '소신'이라 포장하며 내어 놓습니다. 그 포장 안의 내용이 비록 '편견과 차별'이라는 썩은 생선일지라도 말입니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정의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개인 각각은 양심이 있어도 대중 뭉텅이에겐 양심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지사지"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교육과 배움, 깨우침은 늘 소중합니다.


사족)

우크라이나 사태는 저도 거리를 두어 봅니다.

자칫 스스로 소신이라 우기며 편견에 싸여 있을 수 있으니까요. 대신 좋아하는 유튜버 조승연 작가의 콘텐츠 공유합니다. "우크라이나"가 어렴풋하신 분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hIbRZ69bJ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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